인간이 살아갈 때 믿음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믿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간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믿지 못하면서 신앙생활하는 아쉬운 시대다.
나는 주변 사람을 얼마큼 믿고 사는가. 내가 낳은 아이, 입에 있는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은 내 아이가 결혼했을 때, 하나뿐인 집을 줄 수 있는가. 줄 수 없다. 이유는 딱 하나다. 주는 순간 나를 괄시할 것만 같다. 주고 나서도 내가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줄 수 있다. 그런데 자식도 믿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 아버님은 88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지난해 주님 품으로 가셨다. 장손이라서 스무 살에 결혼하셨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스무 살밖에 안 된 아버지에게 재산을 다 줬다고 한다. 동생이 줄줄이 있었는데, 동생들 역시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 시대에는 부부, 형제, 부모-자식 간에 최소한의 믿음은 갖고 살았다. 기독교가 널리 퍼지며 뿌리내리던 시점이었다. 성경을 잘 몰라도 목사님 말씀을 100% 믿고 따랐다. 우리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하시면서 사셨는가. ‘나는 힘들게 살았지만 자식들은 사람답게 살게 해야지’ 하고, 입을 것 먹을 것 아껴 가며 자식들을 교육했다.
사람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사람, 이웃에게 손가락질받지 않는 사람이다. 아들이 둘 있다고 가정해 보자. 큰아들을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려고 서울로 올려 보내고, 작은아들은 형편상 농사지어 형을 뒷바라지하게 했다.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곳에 취직했다. 나중에 봤을 때 누가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을까. 부모에게 효도하며 사는 사람은 동생일 것이다. 공부는 형이 많이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지나친 좌뇌 중심 교육이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갖고 있는 DNA가 있다. 그리고 만들어야 하는 것도 있다. 울거나 웃는 DNA는 타고난다. 하지만 효도하는 뇌, 공부하는 뇌는 선호도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1991년부터 ‘뇌 선호도’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뇌 선호도’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사람은 없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선호도다.
핸드폰을 하는 뇌는 살면서 만들어진다. 어쩌다 핸드폰을 집에 놓고 오면 하루가 불안하다. 옆에 있으면 자꾸 만지게 된다. 선호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뇌가 만들어지면,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고, 옆에 있는 책으로 손이 간다. 선호도 원리로 아이들에게 기본 생활 습관, 즉 생각이 아니라 뇌를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올바른 생각과 행동으로 많은 사람에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성경이 원하는 사람을 만드는 게 나의 목표다. 좌뇌 중심 교육은 점점 더 질서가 없고 자기중심적인 사회를 만들고 있다. 좌우뇌 중심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얼마나 아는가보다는 아는 것을 얼마나 실천하는가를 중시 여기는 교회·학교·사회·가정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우뇌 선호도 훈련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뇌 선호도 교육은 어렵지 않다. 가정에서부터 철저하게 서열과 질서를 지키고 배려하고 양보하며 나눌 수 있게 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홍양표 한국좌우뇌 교육연구소장
◇필자는 뇌과학 박사로 리더스브레인상담센터 센터장이다. 극동방송 ‘좋은 아침입니다’와 TV조선 ‘얼마예요?’의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