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전 애완의 시대에 인간을 위해 품종 개량된 요크셔테리어의 피를 물려받았다. 다양한 테리어 종(種) 중에서 작고 귀여운 외모와 영리한 성격으로 원산지 영국에서 세계 곳곳으로 널리 퍼져나갔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언젠가 요키와 함께 사는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들이 말티즈나 포메라니안 같은 애들과는 달리 순하지 않고 까칠하다는 거다.
순둥이들과는 달리 내가 소위 ‘프로불편러’인 것은 맞다. 반려견을 애교로봇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천만부당한 일이다. 개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격이 천양지차여서 활달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내성적인 친구도 있고 남들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자들도 있는 법이다.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인정하고 부여한 특혜를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아지 같은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고양이 같은 강아지도 있다는 것쯤은 인정해줘야 한다. 사람들은 반려묘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요구를 반려견에게는 당연한 일로 여긴다.
‘강아지를 침대에 올리면 안 된다, 산책 시 강아지가 앞서가지 못하도록 줄을 짧게 잡아라. 식사시간에 사람보다 강아지에게 먼저 밥을 주면 안 된다.’ 수년 전까지 애견훈련소 홈페이지와 반려견 관련 책들은 매뉴얼처럼 이렇게 외쳐댔다. 인터넷에는 이걸 받아 적은 글들이 무한 반복됐다. 그들은 이런 글 앞에 ‘복종교육’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서열’이라는 단어도 함께 언급되곤 했다.
복종이라는 말은 이제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다. 그건 뒷동산에 북쪽에서 날아온 붉은 삐라가 나부끼던 시대에나 먹히던 말이다. 지금 시대에는 직장상사라고 해서 직원들에게 함부로 복종을 강요할 순 없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밀레니얼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복종이나 일방적인 통제를 가했다가는 즉시 ‘꼰대’라는 말이 돌아오고, 그들 세계에서 영원한 ‘아싸’(아웃사이더)로 전락하고 만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각자 다른 취향을 존중하며, 미래를 위한다는 핑계로 오늘을 저당 잡히려고 하지 않는 이들. 별걸 다 줄여 말하고, 별것도 아닌 재미에 열광하며, 별별 일을 하느라 번듯한 직장도 기꺼이 마다하는 새로운 세대.
강아지인 내가 가만히 지켜보니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런 젊은이들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면서도 그들의 단점을 찾아 불평하고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또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 안달한다. 그들을 배우려는 기업들도 있다. 30여 년 전에 ‘에이리언이 온다’고 했던 것과 똑같은 어조로 나이든 자들은 요즘 ‘90년대생이 온다’고 외쳐댄다.
사람과 반려견의 관계가 더 이상 주종(主從) 관계가 아니라 가족관계가 된 것도 다 밀레니얼세대 덕분이다. 나이 지긋한 직장상사가 ‘무조건 하라면 해’라고 명령하고 복종시키는 대신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밀레니얼세대를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견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를 본다. 반려견에게 복종훈련을 시키는 대신 매너교육을 한다. ‘커뮤니케이션’이나 ‘인사이트(Insight)’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카피라이터 누나도 몇 년 전에야 겨우 나와 소통하는 법을 깨달았다.
‘개취’ 존중, 즉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은 밀레니얼세대와 함께 사는 이 사회의 의무이자 당면과제다. 2004년에 태어났으니 밀레니얼세대 반려견이라고 할 만한 나도 개취 존중을 외친다. 개들의 취향 존중을!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