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에 이보다 더 흐드러지게 꽃을 꽂을 순 없을 것 같다. 집안에 하나 걸어두고 싶은 전형적인 정물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동그란 화병이 농구공이거나 배구공이라는 웃음 코드가 숨어 있다. 고려시대의 상감청자 매병이 등장한 것도 있다. 그렇게 동양과 서양이,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그림이다.
김성윤(34) 작가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어레인지먼트(Arrangement)’전을 하고 있다.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연구 끝에 ‘화가가 꽃을 꽂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큰 틀 아래 서양미술사를 비튼 3가지 연작을 내놓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등장했던 장르인 정물화를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글 꽃꽂이’(사진)가 그 하나다. 네덜란드 꽃그림의 대가 얀 브뤼헐과 얀 반 허위섬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 연작에는 개화 시기가 다른 꽃이 한 화병에 꽂혀 있기도 하고, 구글에서 얻은, 실제는 없는 꽃 이미지를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마네의 꽃그림’ 연작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를 오마주한 작업이다. 원작에 대한 해석이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마네가 말년에 병상에서 그린 꽃그림 16점을 흑백으로 재현했는데, 노화가가 병상에서 느꼈을 생에 대한 쓸쓸함이 흑백의 톤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식료품 용기를 꽃병으로 활용한 ‘로고 연작’은 다 쓴 토마토소스병을 버리기 아까워 꽃병으로 쓰는 아내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정물화 바깥 액자 프레임에 브랜드 로고를 얹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꽃그림의 전형적인 느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로고가 갖는 상업적인 느낌을 동시에 취한다. 액자 그 자체를 작품의 부분으로 활용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28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