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9회초 2아웃. 아메리칸리그(AL)가 내셔널리그(NL)에 4-3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AL 덕아웃으로부터 거구의 사나이가 성큼성큼 마운드를 향해 걸어 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C.C 사바시아(39·뉴욕 양키스). 마무리 투수인 팀 동료 아롤디스 채프먼이 삼진 2개로 가볍게 요리를 해 투수를 교체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의 등장은 AL 올스타 감독을 맡은 알렉스 코라 보스턴 레드삭스 감독의 배려 덕분이다. 내년에 은퇴하기로 한 통산 251승의 대투수 사바시아가 투수코치 대신 마운드에 나서 채프먼 및 내야진과 악수를 나누게 하며 마지막 올스타 작별 의식을 치르게 한 것이다. 모든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앞서 사바시아는 경기 중 시구를 맡기도 했다. 2001년 클리블랜드에서 데뷔해 8년간 뛰며 이곳에서만 106승을 거둔 사바시아에게 클리블랜드가 예우를 한 것이다. 그의 시구를 받아준 이는 클리블랜드에서만 총 6번 올스타전에 출장한 포수 샌디 알로마 주니어였다. 경기 뒤 사바시아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클리블랜드, 고맙습니다”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번 올스타전에는 동료를 추모하고 함께하는 동업자 정신도 돋보였다. 경기를 하기에 앞서 올스타 선수들은 일제히 지난 1일 원정 숙소에서 사망한 타일러 스캑스(LA 에인절스)를 기리며 묵념했다. 팀 동료 마이크 트라웃과 토미 라 스텔라는 스캑스의 등번호(45번)를 달고 경기에 나섰다. 트라웃은 “스캑스가 오늘 밤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의 가족들이 이를 보면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중간에는 백혈병 투병 사실이 알려진 클리블랜드 투수 카를로스 카라스코가 등장해 테리 프랑코나 클리블랜드 감독 및 올스타 선수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코라 감독도 “카라스코가 빨리 돌아오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또 경기 도중 양팀의 감독, 선수, 심판, 관중 모두가 서서 잠시 경기를 중단한 채 ‘나는 □를 지지한다(I stand up for □)’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메이저리그가 2008년부터 암 환자들의 치료와 연구에 투자하기 위한 기금 마련 캠페인인 SU2C(stand up to cancer)의 일환이다.
동료, 고인, 아픈 이들을 향한 올스타들의 관심과 애정은 메이저리그가 왜 세계 최고의 무대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