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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보물 보고, 로마사 공부하고, 자연 위대함 느껴보고

여름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즐길 만한 기획전이 다채롭게 마련됐다. ‘그리스 보물전-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에 전시된 발언 시간 제한 물시계. 기획사 제공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전에서 만날 수 있는 에트루리아의 전차. 기획사 제공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전 ‘네이처스 오디세이’에 걸린 바나나잎 우산을 쓴 오랑우탄 사진. 기획사 제공


재판할 때 쓰는 배심원 투표용 원판, 발언 독점을 막기 위해 발언 시간을 재는 ‘6분 물시계’….

민주정치의 근원인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 대해서는 누구나 배워서 알고 있지만, 추상적인 개념이라 막연했다. 하지만 이렇듯 고대 그리스인들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사용했던 유물을 전시장 유리관 너머로 목격하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느낌이 온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에게 손짓하는 블록버스터 기획전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그리스 보물’전은 미술의 관점에서도 좋지만, 그리스에서 꽃 핀 민주주의에 대해 공부하기에 좋다.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전은 서구 문명의 축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가기 전 가교 역할을 했던 고대 국가 에트루리아의 존재를 실감 나게 보여주면서 문명이야말로 다른 문명의 수용과 융합의 산물임을 가르쳐준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 ‘네이처스 오디세이’는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져오는 환경재앙에 대해 고민하며 일상의 습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각각의 전시를 소개한다.

‘그리스 보물전-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9월 15일까지)는 서양 문명의 발상지 고대 그리스가 달성했던 인문학적 예술적 성취를 통해 인류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스 전역 24개 박물관에서 대여한 국보급 유물들이 처음 한국을 찾았다.

기원전 3000년경 그리스 문명의 서막을 열었던 에게해 문명, 기원전 17~12세기 강력한 적수 트로이를 두 번이나 물리쳤다고 전해지는 미케네 문명, 기원전 5~4세기 민주정치를 꽃피운 아테네 문명, 그리고 기원전 4세기 아테네를 멸망시키고 대제국을 건설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발자취가 연대기처럼 펼쳐진다. 에게문명의 대표작인 ‘아크로티리 소년 벽화’, 트로이 전쟁 영웅 아가멤논의 ‘황금가면’, 인류 최고의 문학으로 꼽히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 두상’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믿었던 아테네인들의 철학을 ‘식스팩’ 근육의 조각상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전(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10월 27일까지)은 우리가 몰랐던, 로마 문명의 모태 에트루리아의 속살을 보여준다. 에트루리아는 이탈리아 북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고대 국가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1000년 가까이 지속하며 지중해 문명을 꽃피웠다. 테베레강가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로마는 에트루리아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도시 외관을 본 떠 포장도로와 광장, 수로 시설, 대규모 사원을 갖춘 도시로 발전했고, 마침내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래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잘 알려진 영국 소설가 D H 로렌스는 ‘에트루리아 유적 여행기’(1932)에서 이렇게 썼다. “로마는 무너졌고, 경이로운 그들의 문명도 함께 사라졌다. 오늘날 로마의 핏속에는 로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에트루리아의 피가 흐르고 있다.”

피렌체 국립고고학박물관 등에서 엄선한 약 300점의 유물을 통해 에트루리아가 그리스의 문화를 어떻게 수용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로마에 전해졌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에트루리아인들은 이웃 그리스의 종교관도 수용했다. 그리스의 제우스는 에트루리아에선 타니아로 불렸고 로마에선 유피테르가 됐다. 신화 속 다양한 인물들을 표현한 청동 조각상을 통해 신화의 세계로 날아가 보는 건 어떨까.

왕과 귀족 무덤에서 나온 전차, 브로치와 머리핀, 월계관 등 황금유물이 에트루리안들의 풍족하고 화려했던 생활의 증거가 된다. 그들은 금 제작의 달인으로 평가받았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말이 끄는 전차 경주를 즐겼고, 이런 오락은 로마에도 이어졌다. 로마 행정관이 근무할 때 쓰는 X자 모양 접이식 의자, 로마 사제의 상징인 구부러진 지팡이 등이 에트루리아로부터 건너온 것이다. 에트루리아의 유적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네이처스 오디세이’(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9월 27일까지)는 믿고 보는 다큐멘터리 사진 전문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이다. 지구와 자연의 위대함을 담은 사진과 영상 120여점을 통해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지구 보존의 메시지를 던진다.

전시회의 대표 사진으로 선정된 영국 출신 로빈 숀의 ‘오스트리아 얼음동굴’은 거대한 빙하 앞의 탐험가를 한없이 작은 모습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자연의 위대함 앞에 잠시 전율하게 한다. 사람처럼 상념에 잠긴 ‘생각하는 사자’, 바나나잎을 우산 삼아 비를 피하는 오랑우탄을 포착한 ‘비야, 비야 오지 말아라’ 등의 작품은 인류와 함께 살아갈 반려인 동물의 생존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예술 작품도 전시해 지구 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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