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물과 자신의 종을 비교하고 구분하기 좋아하는 건 인간의 특징이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데, 실은 소위 ‘야만과 문명’의 차이를 구분해 생물 분류학상 영장목 사람과의 포유류를 왕좌에 올려놓기 위해서다. 호모에렉투스, 호모사피엔스, 호모파베르, 호모루덴스 같은 말이 인간만의 특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들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냈다. 소비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콘수무스’, 휴대폰을 생활의 일부로 삼았다고 해서 ‘호모 모빌리쿠스’에 이어 이제는 ‘호모 데우스(Homo Deus)’에 이르렀다. 기아, 질병, 전쟁 등 인간 존재를 위협해온 여러 문제를 극복하고 불멸이나 신성을 향해 가는 인간을 뜻한다니, 평생 사람과 함께 살아온 반려견인 내게도 인간은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가브리엘 마르셀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는 말을 찾아냈다. 길 위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여행하는 인간.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20세기에 살았던 인간 철학자답게 그가 본 인간은 길을 나서는 인간이고, 여행하는 인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19세기는 인간사회에 근대적 의미의 여행, 특히 ‘관광’이라는 키워드가 막 떠올라 유행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1841년 영국의 토머스 쿡은 570명의 관광객을 모집해 역사상 최초의 패키지여행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몇 해 뒤 세계 최초의 여행사 ‘토머스 쿡 앤드 선(Thomas Cook and Son)’을 설립했다. 패키지여행은 1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기차라는 대량 운송수단과 폭죽 터지듯 여기저기서 개최되던 박람회는 관광을 대중화한 일등공신이었다. 사람들은 개들과는 달리 늘 무언가를 타고 무언가 신기한 것을 보기 위해 길 위에 나서는 존재들이니까.
21세기에도 사람들은 너도나도 ‘호모 비아토르’임을 자랑하며 여행을 다닌다. 패키지여행은 누구나 쉽고 편하게, 세계 어디로든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처럼 해외여행을 일상적으로 다니게 된 근대 관광의 역사가 식민지 정책과 관련돼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거다. 휴양 여행지로 유명한 발리섬이 개발된 것도,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에 일본인 단체관광단을 몰고 들어왔던 것도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1906년 아사히신문이 조직한 만한순유단(滿韓巡遊團)은 일본 최초의 해외여행단체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만주와 조선을 보러 왔다. ‘전승국 인민’답게 식민지에 ‘이룩해놓은’ 자국의 근대문물과 전적지를 둘러보고 갔다. 일본은 또 한국인 단체관광단을 조직해 도쿄에 다녀오게 했다. 일본의 발전상을 보여줌으로써 식민지 한국인이 일본에 동화되고 충성하기를 원해서였다.
인류 역사상 근대 관광은 이처럼 ‘야만과 문명’의 차이를 구분하고 비교하고 선전하면서 시작됐다. 물론 100년 전보다 더 현명하고 더 이성적으로 진화된 21세기의 현대인들은 더 이상 관광이나 여행으로 서로의 우월함을 겨루지 않는다. 공감과 공유는 여행자들의 진정한 키워드가 됐다. 때로는 여행을 가는 이유 못지않게 여행을 가지 않는 이유를 공감하고 공유함으로써,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정말 인간다운 문명인가를 가르쳐줄 수도 있다. 호모 데우스는 되지 못하더라도 반려견인 나도 당분간 일본제 간식은 거부하겠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