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8시 경기도 수원 망포역 3번 출구 앞.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기타 케이스를 멘 남자가 자기 키만 한 삼각대를 펼쳐 세우더니 주머니에서 꺼낸 스마트폰을 삼각대에 끼웠다. 잠시 후 스마트폰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남자는 기타를 치며 찬양을 시작했다.
하루의 시작을 버스킹(거리 공연)으로 여는 정찬석(41) 이음교회 목사의 일상이다. 정 목사는 “평소엔 잠원중 망포중 망포고를 돌며 ‘등굣길 버스킹’을 하는데 방학 기간엔 ‘출근길 버스킹’으로 바뀐다”고 했다. 정 목사의 공연은 페이스북 생중계와 함께 매일 1시간씩 진행된다.
찬양 중간에 지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하루 보내세요.” 한 학생은 등굣길에 만나던 정 목사를 알아보곤 반갑게 손뼉을 마주친 뒤 길을 건넜다.
정 목사가 처음 버스커로 나선 건 2017년 7월 12일.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 날부터다. 28세에 시작해 10년 넘게 해온 부교역자로서의 사역을 뒤로하고 기도 끝에 새로운 출발선에 서기로 한 것이다. 바리스타와 전기설비기사 자격증은 물론 홍보물 디자인, 드론 영상촬영 및 편집 등 다재다능한 그를 부르는 사역지가 많았지만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주인공 삼아 찬양하고 선포해보지 않고 강단에 서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안수 받고 난 다음 날 기타 들고 나섰지요. 솔직히 첫날부터 길거리에서 찬양할 용기가 나질 않아 아무도 없는 공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결심을 굳히게 됐어요.”
찬양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정 목사는 10여m 떨어진 벤치에 앉아 찬양을 따라 부르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있었다. 다가가 연유를 물었다. 할머니는 3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 목사는 “할머니께서 온갖 악재가 겹쳐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는데 내 찬양을 듣고 하나님이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면서 “그때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찬양하는 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등굣길 버스킹’은 ‘이 동네에 가장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 누굴까’에 대한 정 목사의 결론이었다. 학교 앞길엔 함께 찬양을 불러주던 할머니 대신 냉랭한 시선으로 정 목사를 쏘아보는 학생들뿐이었다.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손을 들어도 허공에 그의 손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하지만 그 기세에 눌릴 정 목사가 아니었다. 그는 “얘들아 좋은 아침이다. 행복한 하루 보내라”고 응원하며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신나게 버스킹을 펼쳤다.
몇 개월 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 색깔이 바뀐 아이, 새로 귀를 뚫은 아이, 화장 기법을 바꾼 아이는 물론 걸음걸이나 표정만 봐도 친한 친구와 다퉜는지까지 정 목사 눈에 훤하게 보였다. 아이들도 마음을 열어 젖혔다. 정 목사가 손을 내밀기도 전에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아이가 생겼고 어떤 학생은 찬양을 연습해 정 목사 옆에서 함께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방과 후엔 아이들이 정 목사가 머무는 ‘이음 공간’으로 찾아온다. 이음교회의 다른 이름인 이곳에선 아이들이 컵라면 과자 등 간식을 자유롭게 먹고 보고 싶은 책을 보기도 한다. 매주 토요일엔 동네 주민들을 위한 붕어빵 가게로 변신한다. 정 목사는 “대리운전에 야식 배달까지 하며 부교역자 시절을 보낼 정도로 경제력이 바닥이었던 터라 교회 공간은 꿈도 못 꾸고 있었는데 2년 동안 무상으로 공간을 임대해주겠다는 손길이 나타나 아이들의 아지트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주일예배엔 성도 10명 남짓 모이는 작은 공동체지만 정 목사는 “열매를 맺는 건 오직 하나님이고 나는 복음의 씨앗을 찬양에 담아 뿌릴 뿐”이라며 웃었다.
수원=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