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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선 그냥 화가인데… 한국선 ‘파독 간호사 꼬리표’ 붙어요”

노은님 작가가 최근 개인전 ‘힘과 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로 가나아트센터 전시장에서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독일에서는 저를 그냥 화가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꼭 파독 간호사 출신이라고 붙여요.”

재독 화가 노은님(73)씨의 개인전 ‘힘과 시’(8월 18일까지)가 서울 종로구 평창로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 개막식 참석차 방한해 기자들과 만난 노 작가는 눙치듯 이런 불만을 털어놨다.

한국 여성 작가 최초로 독일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되는 등 이미 독일에서 미술 교육자로, 작가로 입지를 굳힌 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중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관성처럼 그에게 ‘파독 간호사 출신’ 꼬리표를 붙인다.

돌이켜보면 26세 때 파독 간호사로 근무하던 함부르크 시립병원에서 가진 개인전이 화가 인생의 출발이었다. 독일 땅을 밟은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한국에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초상화가 갖고 싶어 그림을 배웠던 그는 정밀한 사실화에 질려 포기했었다. 그때 사둔 물감으로 병원 일이 끝난 뒤 짬짬이 그렸는데, 독일인 동료 간호사들이 반색하며 전시를 주선했다. 내친김에 2년 뒤 함부르크 국립미술대학에 정식 입학했고, 그 길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노 작가의 작품세계는 사실주의와 거리가 멀다. 단순한 선과 원초적인 색으로 화면을 구성해 ‘생명의 화가’로 불린다. 초창기인 1984년 작품 ‘생명의 시초’는 200호 대형 화면을 가득히 채운 화살표들이 마치 무정형의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힘의 양상을 보여준다. 캔버스가 아닌 한지의 그림들은 여백의 미까지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인 아넬리 폴렌은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고 극찬했다.

젊은 시절 노 작가는 “우울증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고, “운명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내가 누군지에 대한 물음”에 빠져 살았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화면은 그 근원을 탐구한 결과다. “15년을 그렇게 헤맸는데, 어느 날 아침 막힌 하늘이 뚫린 듯 편해졌다”는 그녀의 화폭은 예전처럼 거침없으면서도 원색을 구사해 밝다. 작업실이 있는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에는 11월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는 영구 전시관이 개관된다.

글·사진=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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