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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김영훈] 노력의 빛과 그림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고, 거지도 부지런하면 더운밥을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다. 신기하게도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이 속담은 우리에게 더 많은 희망과 용기를 건넨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과 용기는 한 가지 믿음을 담보로 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일은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대부분의 문제는 노력의 부재로 야기된다는 믿음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믿음이 모든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열심히 노력하면 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동양인들은 그렇다고 답하고, 서양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동양인들은 성공과 실패가 한 개인의 노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지만, 서양인들은 한 개인의 타고난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동양인과 서양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실패한 과제와 성공한 과제가 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어느 과제에 더 큰 열정을 보이겠는가. 스티븐 하이네 교수의 실험에 의하면 동양인들은 실패한 과제에서, 서양인들은 성공한 과제에서 더 큰 열정을 보였다. 동양인들은 실패의 이유를 노력의 부재로 믿었기 때문에 실패한 과제에 더 집중했고, 서양인들은 실패의 이유를 능력의 부재로 믿었기 때문에 실패한 과제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양의 ‘노력 신드롬’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했고, 밤잠을 줄여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하여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이루게 했다.

하지만 ‘노력 신드롬’은 우리가 원치 않았던 몇 가지 치명적인 아픔을 남겼다. 첫 번째 아픔은, 세상에는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것은 절대 아니다. 노력이 성공을 보장한다면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다 성공했을 것이다. 잭 햄브릭크 교수에 의하면 음악 분야에서의 성공은 79%의 선천적 재능과 21%의 노력,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공은 82%의 선천적 재능과 18%의 노력, 교육에서의 성과는 96%의 선천적 재능과 4%의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성공과 실패는 노력 외에도 한 개인의 선천적 능력과 유전적 기질 그리고 가정적·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훨씬 많은 것이다.

노력을 강조할 때 발생하는 두 번째 아픔은 성공과 실패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묻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은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실패는 노력하지 않은 결과로 간주된다. 그래서 그에 따른 상과 벌은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느껴진다. 가난한 것, 취업을 하지 못한 것, 몸이 건강하지 못한 것,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 살찐 것 등 모든 것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은 개인의 몫이고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천적 능력과 유전적 기질 그리고 가정적·사회적 환경을 선택하지도 않았고 선택할 수도 없었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수많은 요인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이 많다.

그럼, 노력하지 말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실패했더라도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적절한 능력과 상황을 갖추지 못했다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둘째, 성공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누리는 수많은 해택은 그들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고,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한 개인의 성패에 대해 사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구조와 환경이 특정한 사람들을 성공 혹은 실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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