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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나이 수업’] 노년의 약해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일러스트=이영은>




가끔은 그런 날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날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하소연이 쏟아져 들어왔다.

최근 후각 기능이 약해져 이상한 병에라도 걸린 건 아닌지 심란하다는 60대 초반 여자 선배, 나이 들면서 짜증이 늘어난 남편이 작은 실수 하나에 어찌나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지 더는 참을 수 없어 일주일째 냉전 중이라는 60대 초반의 다른 선배, 작년에 직장에서 은퇴하고 나니 밀려오는 허전함에 살아온 인생 전부가 허망해서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는 60대 초반 남자, 경도인지장애로 2년 전부터 약을 먹으며 관리 중인데 최근 병원에서 파킨슨병 진단까지 받고 보니 우울하고 만사가 귀찮아 죽겠다는 70대 어르신, 내 몸이 아프니 자식들도 안중에 없고 그저 하루하루가 힘들어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날만 기다린다는 80대 후반 어르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며 작은 해결책이나마 함께 도모할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내게 이런 속내를 내보인 것은 아마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상태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아프거나 불편하고 평생 매달려온 일에서 물러나야 하며 관계는 삐걱거리고, 완치가 어려우니 남은 시간 내내 관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질병을 앓게 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꼽는다면 나이와 함께 오는 ‘약함, 약해짐’일 것이다.

눈앞에 닥친 일에 치이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바쁘다 해도, 중년 이후에는 자기 나름대로 노년을 어떻게 보낼지 어떤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꾸려나갈지 막연하게라도 그려보고 가슴속에 꿈을 품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약해지는 몸과 마음에 시달린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이 나이에 이른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가장 많이 듣게 된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이런 병에 걸릴 줄이야!”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자녀들이 하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총명하던 어머니가 저리되실 줄이야, 다른 사람 모두가 병에 걸려도 우리 아버지는 정신 놓는 일 없으실 줄 알았는데….”

30년 동안 노인복지 현장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어르신과 중년들을 만나면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나이 들고 늙고 마지막을 보내는 법이니 지금 이 시간을 정성껏 사는 게 제대로 나이 드는 방법’이라고 수없이 말하고 글을 썼다. 그러나 막상 젊음보다는 나이 듦 쪽으로 저울추가 살짝 기울어지다 보니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없음을 실감한다.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몸과 마음 보살피며 지키고 살아도 노년 혹은 말년의 삶 역시 예측불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약함이나 약해짐에 대한 인정과 받아들임 아닐까.

20대 청년의 무릎과 60대의 무릎이 똑같은 상태라면, 30대 젊은 사람의 폐활량과 70대 중반의 폐활량이 같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젊어서의 기억력과 판단력, 적응력과 순발력이 고스란히 유지되는 것 또한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물론 나이 들어서 지니게 되는 너그러움이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는 또 다른 것이지만 말이다.

나 역시 깨끗하고 온유한 얼굴로 나이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고 끝까지 똑똑한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내 꿈이나 바람과 달리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린다면 어떻게 할까 걱정되고 두렵지만, 모두가 가는 길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리라 마음을 다잡곤 한다. 꿈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생은 꿈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해주시는 개개인의 고유한 시간임을 믿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새번역, 로마서 8:26)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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