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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하면 공주·부여만 떠올리는 대중에게 익산 알리고 싶었죠”



“전북 익산이 백제의 고도(古都)라는 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백제 문화의 절정기는 멸망하기 직전 사비기의 7세기였죠. 그 시기를 대표하는 왕궁리와 미륵사지를 품고 있는 익산을 대중들이 잘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한국 고대사에 관해 쉽고 찰지게 쓴 대중서가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이병호(47·사진) 전시과장이 펴낸 ‘백제 왕도 익산, 그 미완의 꿈’(책과함께)이 그것이다. 이 과장은 2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백제에는 충남 공주(웅진)와 부여(사비) 외에 익산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해 학예직으로 근무하다가 2015년부터 올 2월까지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국립익산박물관의 전신) 관장으로 재직했다. 이때의 경험이 책 출간으로 이어진 것이다.

책은 1910년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고적 조사가 시작되면서 백제의 도시로서 익산이 ‘발견’되고,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들어 백제 왕도로서의 고고학적 사료들이 축적되어 가는 과정 등 ‘백제 왕도 익산’의 탄생 100년사를 서술한다. 백제 옛 궁터인 왕궁리에서 수세식 화장실 유구가 발견되기까지의 일화 등 발굴 뒷이야기가 읽는 맛을 더한다.

박사학위를 소지한 연구자로서의 면모도 느낄 수 있다. 2009년 1월 익산 미륵사지석탑의 해체·수리 과정에서 무왕 말년의 왕비가 백제 귀족 가문인 사택씨 출신이라고 밝히는 유물이 발견돼 고고학계가 뒤집힌 적이 있다. 삼국유사 속 무왕과 결혼했다는 서동요의 주인공 신라 선화공주는 어떻게 된 것인가. 그는 이렇게 해석한다. “무왕 때의 백제는 신라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민간 설화의 주인공을 선화공주로 대치해 양국 간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려는 양국 민중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학술서의 깊이를 포기하지 않은 대중서라 할 수 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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