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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휴일] 어머니의 문장



팔순 어머니 방은 정갈한 문장이다
눈 수술 앞둔 어머니 입원실에 모셔두고
어머니 방에 잠시 눈 붙이러 왔는데
이 문장에서 나는 잘못 찍힌 문장부호 같다
점점 어두워진 눈으로 쓴 생의 문장
무엇 하나 뺄 것 없고 더할 것 없다
주어는 주어의 자리 서술어는 서술어의 자리
단단하게 앉아 있다, 형용과 수사 없이
어머니는 어떻게 이 아름다운 문장 빚었을까
어두워지는 눈으로 종일 쓸고 닦는 일만으로
어머니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의 지우개 닳아 없어졌을까
어머니란 주어가 잠시 비운 사이
먼지 한 톨 끼어들 틈 없는 긴장에
간장종지 하나라도 위치를 바꾼다면
이 문장 와장창 깨어져 비문이 될 것 같다
어머니 혼자 주무시던 이부자리에서
눕지 못한 채 웅크리고 앉아
정유년 섣달 길고 긴 밤 혼자 견디다

정일근의 시집 ‘저녁의 노래’(아시아) 중

시인은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두고 홀로 어머니 방에 들어와 웅크리고 앉았다. 어머니의 방은 정갈한 문장처럼 빈틈이 없고, 그래서 한 편의 시처럼 여겨진다. 시인은 “어머니는 어떻게 이 아름다운 문장 빚었을까” 감탄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의 지우개 닳아 없어졌을까” 한탄한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일근의 신작 시집에 실린 작품이다. 책은 출간 단계부터 영역(英譯) 작업을 진행해 한영 대역(對譯) 형태로 최근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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