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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균·임경섭의 같이 읽는 마음] 작은 마음들을 향해 내미는 따뜻한 손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를 펴낸 작가 윤이형.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이형은 이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 ‘개인적 기억’ ‘설랑’ 등이 있다. 문학동네 제공






금주부터 ‘책과 길’에는 출판 편집자이자 1981년생 동갑내기 부부인 김필균씨와 임경섭씨의 서평이 각각 격주로 실립니다. 코너 제목은 ‘김필균 임경섭의 같이 읽는 마음’입니다. 김필균씨는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에서 10년 넘게 일했고 현재는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 중입니다. 최근엔 인터뷰집 ‘문학하는 마음’을 출간했습니다. 임경섭씨는 한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시집 ‘죄책감’ ‘우리는 살지도 죽지도 않는다’을 출간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등록금 투쟁이 한창인 교정을 나서던 내 모습을 가끔 떠올린다. 오후에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가 있을 예정이니 학우들의 참여를 바란다는 쉰 목소리가 교문을 나서는 뒤통수에 와서 박혔다. 해마다 오르는 등록금으로 우리 부모님의 허리가 휜다는 호소에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지금 등록금 벌러 알바 가야 하는데….” 고작 내 귀에나 들릴 법한 소리였다. 그런데 내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오자 등록금 투쟁보다 알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 상황이 더 절박하게 다가와서,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짜증이 확 몰려왔다. 무거운 다리를 쿵쾅거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그때의 내 모습이 잊히지 않는 건, 설명할 길 없는 억울함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으로 다리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음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길 없는 억울함을 느낀 일은 몇 해 전에도 있었다. 결혼한 지 꽤 지났음에도 아이가 없는 나에게, 한 친구가 아이를 왜 갖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 친구의 눈에는 걱정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며 내가 경제 활동을 못하는 동안 생활이 유지되지 않아서 당장은 힘들다고 답했다. 썩 와닿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친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수개월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내가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야기가 나오자 그 친구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너, 돈 없어서 애 못 낳는다는 말, 앞으로 하지 마.” 내가 어느 지점에서 그런 비난 섞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아니 그럴 이유가 없으므로 그것이 비난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어서 나는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그냥 ‘나’로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듯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내 안에서의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서로 잘 안다고, 그래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과의 갈등은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아프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그럴 때마다 한없이 왜소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이런 갈등을, 그리하여 점점 작아지는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책이 있다. 윤이형의 신작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다.

열한 편의 소설에는 나와 닮은 인물들이 있다. 아무 일 없이, 아무 잘못 없이 평범하게 살다가 도착한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자리에서 문득 자신이 잊고(혹은 잃고) 지나온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경희(‘작은마음동호회’)가 그렇고, “남들의 시선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직은 되지 못”한 승혜(‘승혜와 미오’)가 그렇다. 어떤 것과도 치열하게 싸워본 적 없이 둔감하게 나이 들어가는 재경(‘마흔셋’)은 몇 년 뒤의 나의 모습일 거란 예감이 들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용 갈처럼 나도 “점점 나아진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의심하는 용-하줄라프 1’) 사람은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 미래를 보는 자가 ‘선한 마음’에 대해 “그건 아주 작고 연약한 거라서, 어떤 무서운 일도 일어나게 할 힘이 없다고”, “그래서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거라고” 믿어야겠다(‘이웃의 선한 사람’) 말하는 장면에 이르자, 이 책이 내게 슬며시 손을 내미는 것 같았다. 이렇게 손을 맞잡는 것이 서로의 작고 연약한 마음을 지키는 일이라는 듯. 각각의 작품들을 만났을 때도 좋았지만 이렇게 한 권으로 묶이니 더 힘이 세진 이 책처럼 말이다. 나는 주저 없이 그 손을 잡는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까지 순수해져야” 하는지 따져보는 “자기검열”은(‘용기사의 자격-하줄라프 2’) 잠시 미뤄둔다. 다만 고통받는 누군가의 곁에서 “선이나 악 대신에 책임이라는 단어에 모두가 조금씩 연루되었음을 인정하고 그 단어를 나누어” 가지는(‘피클’) 사람들로, 우리가 서로를 물들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지금껏 만난 적 없는 참으로 단단하고 따뜻한 손이 내 작은 마음에 전해주는 또 다른 작은 마음이다.

<김필균·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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