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강단에는 강해설교보다 주제나 인물 설교가 여전히 많다. 성경 본문 사용도 제한적이다. 신약성경 복음서나 바울서신이 많고 구약성경도 창세기나 시편, 잠언이 주류를 이룬다. 예언서는 이사야 일부 본문 외에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주제 설교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성경의 원래 문맥이나 뜻과 상관없이 목회자 자신의 생각을 신자들에게 투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하기도 한다.
서울 구로구 예수전도단 목회자성경연구학교(PSBS) 강의실에서 지난 23일 만난 박경서(59·서울 한빛감리교회 목사) 교장간사는 “목회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교인에게 전달해야 한다”며 “설교는 목회자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성경에서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가 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해 이를 신자들에게 알려주고 삶에 적용토록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PSBS는 목회자를 위한 성경연구 프로그램이다. 이른바 ‘귀납적 성경 연구’로 목회자들이 스스로 성경을 공부해 주석을 만들 수 있도록 안내한다. 예수전도단의 대표적 신앙훈련인 예수제자훈련학교(DTS)를 이수한 목회자에 한해 2년(총 40주) 과정으로 제공한다. PSBS는 목회자가 성경을 깊이 읽어 스스로 성경주석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매주 숙제와 함께 첨삭 지도로 진행돼 학기별 20명 정도의 수강생만 받고 있다. 2007년 시작 이후 200여명의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사 등이 거쳐 갔다.
귀납적 성경 연구란 성경 본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이미 도출된 결론을 다양한 본문으로 입증하는 연역적 연구와는 다르다. 성경 본문과 씨름하면서 성경을 기록한 저자의 의도, 성경의 원(原) 독자들에게 들려주려 했던 메시지를 만나는 것이 목표다.
박 교장간사는 “현장에 있어보니 목회자들이 의외로 성경을 안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성경 이외의 정보 수집에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깊이 있게 읽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했지만 정작 하나님을 몰랐다. 그래서 BC 586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며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도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성경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문자와 교리의 틀 속에 너무 갇혀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말했다.
성경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원래 독자에게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 연구가 중요한 것은, 성경이 목적을 가진 책이기 때문이다. 좋은 말씀을 백화점식으로 수집한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드라마처럼 신구약이 연결되고 기승전결이 있으므로 정확한 문맥 파악이 중요하다.
박 교장간사는 성경 정독을 언급했다. 정독은 성경 본문이 어떤 배경에서 기록됐고, 거기서 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가면서 반복되는 단어와 대조 단어, 등장인물 등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본문이 말하려는 의미와 정신을 우리 삶의 영원한 진리로 적용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경은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믿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본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안내해줄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목회자와 교회가 그 가이드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는 “성경 해석은 우리가 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방법론대로 하면 90% 이상 이해할 수 있다. 나머지 10%는 성경의 독특한 구성법과 고대 유대 문화를 알면 거의 이해할 수 있다”며 “난해한 부분도 앞뒤 문맥을 파악하면 대부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박 교장간사는 “한국교회 안에 말씀에 대한 갈망이 이전보다 커지고 있는 것은 희망적 신호”라며 “지금은 본질을 되찾아야 할 시기다. 목회자들은 신자들이 왜 성경을 더 알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PSBS는 내년부터 일반성도 대상의 성경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누구나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하자는 취지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