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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김철오] 정치적 중립





올림픽 헌장에서 ‘정치’는 아홉 차례 언급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락은 모든 준칙의 근간이 되는 7대 기본원칙 중 다섯 번째 항목의 도입부다. ‘올림픽 운동(Olympic movement) 안에서 스포츠 단체는 정치적 중립(political neutrality)을 채택해야 한다.’

경기장 안팎에서 정치적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강박적으로 되뇌는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은 올림픽 헌장에서도 으뜸이 되는 기본원칙에 명시된 국제 조약이다. 올림픽 헌장에서 그 이후로 여덟 차례 등장하는 정치 관련 조항은 기본원칙에 담지 못한 이행사항을 세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졌고, 그만큼 중요한 세 가지만 골라 나열하면 이렇다. ‘선수에 대한 정치적·상업적 학대를 금지한다.’(2조 11항)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헌장 이행을 방해하는 정치적·법적·종교적·경제적 압력에 저항한다.’(27조 6항) ‘정치·종교·인종을 포함한 어느 목적의 시위도 올림픽 시설과 그 주변에서 금지된다.’(50조 2항)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 206개국은 2017년 9월 15일에 마지막으로 수정한 올림픽 헌장을 지난 6월 26일 스위스 로잔 본부에서 제134차 총회를 열고 다시 한번 채택했다. 여기서 정치 관련 조항은 변경되지 않았다.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은 여전히 유효한 약속이다.

하지만 선언과 다짐은 언제나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정치는 틈만 나면 스포츠에 개입했고, 스포츠는 기회를 엿봐 정치를 이용했다. 그러니 당대표가 경기장에서 선거유세를 지원하고, 국회에서 체육계의 의견을 구하지도 않은 올림픽 보이콧이 거론되는 일쯤은 간단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올림픽은 1896년 원년 대회를 시작할 때부터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IOC를 창설한 프랑스 교육가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교육학에 체육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근대 올림픽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쿠베르탱이 체육교육을 통해 얻으려 했던 것은 국력이었다.

올림픽 100주년을 맞은 1996년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출간된 ‘올림픽 정치학’을 보면 쿠베르탱은 1871년 보불전쟁 패전의 원인을 프랑스군의 약해진 체력에서 찾았다. 쿠베르탱에게 체육교육은 프랑스를 다시 패권국으로 일으켜 세우는 사명과 같았다. 팽창하는 제국주의에서 유럽의 국경이 쉴 새 없이 바뀌던 19세기 말의 일이다. 쿠베르탱의 의도가 무엇이든, 올림픽은 결과적으로 국가주의의 산물이 됐다.

패권국은 올림픽 메달 순위를 국력과 동일시했고, 신흥국은 개최국 지위를 패권국 도약의 발판으로 여겼다. 나치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개회를 선언하고 3년 뒤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결코 역사의 우연이 아니다. 베를린올림픽은 나치 정권을 선전하고 독일 국민을 군국주의로 결집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 올림픽은 헌장만 개선됐을 뿐 여전히 정치적 중립을 이루지 못했다. 개최국은 더 간교한 수법으로 올림픽을 정치에 활용한다. 2020년 도쿄 올림픽조직위원회는 성화 봉송 지도에서 독도와 쿠릴열도를 자국 영토처럼 점을 찍어 표시했다. 패럴림픽조직위원회는 메달에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방사형 무늬를 새겨 놓고 ‘전통 부채’라고 둘러대고 있다.

세계의 손님에게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먹여 방사능 안전성을 입증하겠다는 말은 이미 1년 전부터 아베 정권 안팎에서 나돌았다. 도쿄 조직위의 공식 입장이 아니니 각국 올림픽위원회는 항의할 수 없다.

쿠베르탱이 추구했던 올림픽의 이상은 국가 간 평화와 계층 간 화합이었지만, 3세기째 계승된 경험은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다. 쿠베르탱은 1898년부터 작성한 올림픽 헌장을 10년 뒤 초판으로 인쇄했다. 이때까지 없었던 정치 관련 조항은 1933년 인쇄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수정·보강된 이 조항은 제국주의에서 냉전을 거쳐 테러리즘에 이를 때까지 인류가 여러 정치적 실패를 반복하고 쓴 경험의 역설이다.

그러니 올림픽 헌장에서 이 조항이 삭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실패한 제국주의 사관을 스포츠에 끌어들이는 개최국의 생떼가 1년 앞으로 다가온 21세기 다섯 번째 올림픽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김철오 스포츠레저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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