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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교실엔 ‘조국 딸’만 있는 게 아니다



“조국 딸이 밟은 코스는 당시에는 극히 일부 상류층이나 알 만한 수법입니다. ‘조국 캐슬’이나 다름없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인 2010년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한 한 인사의 말이다. 지난주 만난 그는 조 후보자 딸이 올라탄 사다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반인이 감히 올려다 볼 수 없는 ‘금수저 사다리’라는 말까지 했다.

입학사정관제는 이명박정부 때인 2008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등에 의해 시범 도입됐다. 이듬해에는 고려대, 성균관대 등으로 확대됐다. 학업성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형 자료를 통해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평가해 입학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도입 취지였다. 객관식 시험으로 학생을 줄 세우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보고 뽑자는 것이었다.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스펙을 쌓기가 쉽지 않았고 서울 대치동 학원가로 불리는 사교육계의 배만 불렸다. 스펙 쌓기 경쟁이 과열되면서 다양한 재능을 ‘창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런 폐단을 줄이기 위해 박근혜정부 때인 2013년 ‘대입 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이 발표됐고 입학사정관제도 학교생활기록부종합(학종) 전형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하지만 편법만 달라졌을 뿐 금세 학생, 학부모의 스펙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와 학종의 최근 10여년간 변화를 보면 특정 계층과 극소수 최상위권 학생들이 얼마나 이 제도를 유용하게 활용했는지 알 수 있다. 오죽하면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까지 나올까. 여기에는 교육 당국의 땜질식 누더기 처방도 한몫했다. 조 후보자 딸이 대학에 들어간 2010년까지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논문 등재, 도서 출간, 발명 특허, 교외 경시대회, 해외 봉사활동, 공인 어학시험 등을 모두 학생부에 기록할 수 있었다. 조 후보자의 딸은 병리학 논문의 제1저자, 조류학 논문의 제3저자, 콘퍼런스 인턴, 경시대회 장려상 등으로 스펙을 차곡차곡 올리며 세계선도인재전형으로 고려대에 입학했다.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2010년 교외 수상 경력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을 금지했다. 2011년엔 공인 어학성적, 2013년에는 발명 특허 취득 내용을 학생부에 쓰지 못하게 했다. 논문 등재 이력은 2014년에야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이 금지됐다. 결국 고액 사교육 컨설팅이 대입 스펙을 창조해 부유층이 이를 한 번 활용하고 이게 중산층 이하로 퍼져나갈 때쯤 교육 당국이 나서서 금지하는 뒷북 대처의 연속이었다. ‘할아버지의 재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인맥’에 대치동 학원가가 결탁하면서 현실 속의 ‘나’와 완전히 다른 ‘나’를 만들어낸 극소수만의 전형에 교육부는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대한민국 교육은 1위로 대변되는 최상위권 학생에게 집중돼 있다. 소수에게 각종 경력을 채워주기 위해 대부분의 아이들을 들러리 세우는 것이 우리 학교의 서글픈 현실이다. 교육부의 ‘2017년 고등학교별 교내대회 수상 현황’에 따르면 충남의 한 고교에서는 한 명의 학생이 총 88개의 상장을 받았고 서울의 한 고교에서는 한 학생이 79개의 상장을 받았다. ‘학생부 1등급 몰아주기’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여기에 부모의 학력과 재력까지 가세하면서 교육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돼버린 셈이다.

‘교육 강국’ 핀란드에서는 교실과 학생이 중심이고 성적 및 특정 학생 위주의 교육은 배제된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는 ‘낙제율 0%’를 지향한다. ‘재능과 재력을 가지고 태어난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 좀 더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집중한다.’ 개인 차이를 사회적 차별로 고착화하지 않고 맞춤 지원으로 메우는 핀란드의 이 교육 철학은 시사하는 바 크다.

‘조국 사태’에 대통령이 또다시 제도를 탓하자 교육 당국은 입시 개편에 부랴부랴 나서는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다. 제도를 교묘히 악용하는 사람이 문제인데 말이다. 부모의 격차가 대물림되지 않는 사회, 공정한 경쟁과 평등한 기회가 상식이 되는 사회, 아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는 진정 불가능한 것인가. 교실에는 ‘용’으로 둔갑한 조국 딸만 있는 게 아니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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