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가 발행되기 시작한 때는 2002년 월드컵 이후 겨울, 그러니까 내가 한창 군 복무 중일 때다. 한 게임에 2000원이던 로또를 휴가나 외출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기 시작했다. 희망사항이라고는 휴가와 전역, 딱 두 가지만 갖고 살던 우리(군인)에게 ‘당첨’이라는 크나큰 희망사항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었다. 웬만한 고참은 휴가 나가는 후임병에게 로또 구매를 대신 부탁했고, 몇몇 고참은 몇 푼 되지도 않는 한 달 치 급여를 로또에 탕진하기도 했다.
친구 중 유일하게 상근 예비역(집에서 출퇴근하는 현역병)으로 군 복무를 하던 김은 매주 로또를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당시 김이 전한 ‘로또 구매 철학’은 내게 로또를 구매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그 힘은 아직도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에 따르면, 자신은 로또를 당첨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했다. 김은 매주 월요일마다 로또를 구매하는데, 그 작은 종이 한 장을 지갑 안에 넣어두면 일주일이 풍요롭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주 로또에 당첨된다면’으로 시작되는 즐겁고 풍요로운 꿈을 일주일 내내 꿀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당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꾸기 위해서 로또를 산다는 것이었다. 해서 나는 김을 따라 (매주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주초에)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나의 꿈은 그때부터 시작됐고, 그 꿈은 18년째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로또는 ‘6/45’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사실 이 숫자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저 정도의 확률이라면 나 같은 사람은 1등에 몇 번 당첨되고도 남았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로또를 산다. 이것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줄 ‘운’, 이 ‘행운’은 대체 어디에서 숨어 있는 걸까. 얼마나 깊고 오묘한 곳에 숨어 있기에 행운은 나를, 그리고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걸까.
황현진의 장편 ‘호재’는 행운이나 호재와는 거리가 먼 곳, 아니 아예 그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호재는 이혼 후 자신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부모 대신 고모 두이에 의해 길러진다. 소규모 방송국 비정규직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호재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고모부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두이의 전화였던 것. 호재의 고모부가 살해되는 장면으로부터, 그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소설은 호재와 두이라는 두 주인공의 시점이 계속해서 교차하면서 스펙터클하게 전개된다. 가족이라고는 실종된 동생 두오와 조카 호재밖에 남지 않은 두이는 남편의 빈소에 앉아 지난날들을 회상한다. 일곱 살 터울 두오가 태어나던 날과 어린 두오가 병으로 죽을 뻔한 날, 두오의 고등학교 졸업식과 부모의 장례식 같은 것들을 말이다. 두이가 떠올리는 그날들은 하나같이 ‘행운’이라는 말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들이다. 그러나 두이는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그저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난날을 묵묵히 되돌아볼 뿐이다. 강인하다고도 볼 수 있는 두이의 이런 태도는 할머니로부터 기인한다. 가부장의 가해자인 할머니와 피해자인 어머니 곁에서 두이는 그저 묵묵히 버티는 법을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죽은 고모부는 “토요일마다 지갑에 꼬깃꼬깃 접어둔 로또를 펼쳐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낙첨 사실을 확인”하는, “매주 빠짐없이 복권을 산 세월이 수십 년이라 이젠 될 만도 하다”는 지론을 가진 소시민이었다. 살해되던 날 저녁, 그는 보통 때와는 달리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희희낙락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었다. 고모부는 나처럼, 우리처럼 로또 한 장에 한 주 치의 꿈과 희망을 담고 사는 보통 사람이었다. 그는 왜 죽었을까? 누가 그를 죽인 걸까?
소설은 서울의 상암동과 가좌동 인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곳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곳의 묘한 느낌을 알 것이다. 이편과 저편이 전혀 다른 세상처럼 놓여 있는 느낌 말이다. 소설 ‘호재’는 이편과 저편의 간극, 혹은 삶과 죽음의 간극을 첨예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그곳에서 “뭘 훔쳐본 적도 없는” 나는 왜 죽었을까? 누가 우리를 죽인 걸까?
<임경섭·출판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