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에콰도르에서 11일 동안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끝에 정부와 시위대 간 협상이 타결됐다. 에콰도르 정부는 13일(현지시간) 시위를 주도한 에콰도르토착인연맹(CONAIE)과의 협상에서 긴축정책 시행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원주민의 처우 개선책 마련, 폐허가 된 도시와 도로 복구, 정부의 공공부채 감소를 위한 대안 모색 등 해결해야 할 숙제는 산적하다.
수도 키토는 열흘 넘게 진행된 시위로 도시 곳곳이 전쟁터로 변했다.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데 이어 시위대를 향해 군대의 진입을 명령한 뒤로 사상자도 속출했다. 에콰도르 옴부즈맨 사무국에 따르면 지금까지 7명이 숨지고 1340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모레노 대통령이 지난 12일 수도 키토와 주변 지역에 24시간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도로를 통제하면서 현지 선교사들의 사역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9년째 사역 중인 김영덕 선교사는 1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주일이면 키토 인근 지역 인디헤나(원주민)들을 찾아가 예배를 드려왔는데 도로가 막혀 옴짝달싹 못 하게 됐다”며 “한인교회 성도들도 주일인 어제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전했다.
이웃 섬김 사역에도 제동이 걸렸다. 김 선교사는 “매주 토요일 아침 대통령궁 뒤편 시장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빵과 차를 나눠주는데 지난주엔 진입로가 막혀 차를 돌려야 했다”며 “빵을 나눠주지 못한 건 사역을 시작한 지 8년여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가 본격화되면서 생활물가가 오르고 가게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토착민을 비롯한 빈곤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시골 마을에 어린이도서관을 짓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돌보는 다른 선교사도 길목이 막혀 사역이 중단됐다고 들었다”며 기도를 요청했다.
시위는 모레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제통화기금(IMF)과 맺은 협정에 따라 긴축정책을 시행하면서 촉발했다. 정책 시행 직후 정부는 유류 보조금을 폐지했고 유가가 두 배 가까이 상승했으며 다른 소비재 가격도 크게 올랐다.
김 선교사는 “농사와 농산물 유통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석유이고, 모레노 대통령이 선거 때 국가 주요 산업인 농업에 종사하는 원주민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분노가 더 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지인 목회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 현장에 들어가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했고 에콰도르개신교연합을 중심으로 현지교회들도 금식하며 기도했다”며 “목숨 걸고 거리로 나온 시위대에 기도와 위로가 큰 힘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선교사가 SNS 메신저로 보내준 문자에는 기도 제목이 적혀 있었다. ‘우기에 접어들고 있는 날씨 가운데 여전히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이 지켜지도록’ ‘조속히 도로가 복구돼 빈곤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열리도록’ ‘이 땅에 평화가 깃들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