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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혹독한 독재자?… 위대한 신학자·사상가였다”

1549년 스위스 제네바 시의회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장 칼뱅의 모습이 담긴 그림. 비아토르 제공




칼뱅의 저작인 ‘기독교 강요’ 1559년 판(왼쪽) 속표지와 칼뱅의 필체. 비아토르 제공


“불운한 도시 제네바를 혹독하게 통치하는 위대한 독재자요, 심장도 없고 연민도 없는 사람.”(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창세기 주석’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을 비판함으로써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다.… ‘누가 감히 코페르니쿠스의 권위를 성령의 권위 위에 둘 것인가.’”(미국 코넬대 공동설립자 앤드루 딕슨 화이트)

16세기 종교개혁가 장 칼뱅에 관한 후대 지식인의 평가다. 냉소와 혐오마저 느껴지는 이들의 평가엔 칼뱅과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칼뱅주의 운동이 ‘서구 문명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고 지적으로 빈곤할 뿐 아니라 신앙심을 들먹이며 흥이나 깨는 운동’이란 함의가 담겼다.

‘피에 굶주린 독재자’ ‘엄격한 도덕주의자’ ‘지성의 진보를 방해하는 적’…. 칼뱅이 지금껏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 수식어다. 세계적 석학으로 신학자이자 분자생물학자인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스 영국 옥스퍼드대 석좌교수는 이런 통념이 사실과 매우 다르다고 지적한다. 츠바이크의 묘사에는 실체적이고 역사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화이트의 주장은 이후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에도 언급된 내용이다. 하지만 칼뱅은 저작 어디에서도 이런 내용을 밝힌 적이 없다. 19세기 캔터베리대성당 주임사제 윌리엄 페러가 이 표현을 썼는데 그는 근거 없는 주장을 일삼는 인물로 유명했다. 하나의 허구가 칼뱅을, 나아가 근대 기독교를 평가절하하는 도구로 널리 사용된 것이다.

저자는 근거 없는 미신을 타파하는 동시에 칼뱅이 근대 세계, 특히 서구 사회에 미친 영향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칼뱅을 신학자 그 이상의 존재로 정의한다. 레닌을 단순한 정치이론가로 볼 수 없듯, 근대사 곳곳에 영향을 미친 칼뱅 역시 사상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16세기 서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 이야기로 시작되는 책은 칼뱅의 생애와 그의 주요 업적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당시 서유럽은 태생과 전통에 근거해 사회적 위치가 정해지는 정적(靜的) 세계관이 휩쓸고 있었다. 칼뱅주의는 이와 반대로 세상에서 개인의 지위는 각자의 노력에 달렸다고 선언했다. 칼뱅은 삶의 전 영역을 거룩한 성화로 봤으며 ‘노동이 곧 기도’라는 새로운 노동관을 주창했다.

제조업 출판업 의류업 등의 공인(工人) 계층은 일상 속 노동의 영성을 강조하는 칼뱅의 생각에 공감했다. 저자는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운 이러한 관점이 칼뱅주의가 서구 문화에 남긴 위대한 유산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칼뱅은 자본 축적도 죄악시하지 않았다. 사유재산권을 지지했으며 노동 분업 체계를 높이 평가했다. 신명기 말씀을 들어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건 원시 유대 농경사회에 맞춘 것이라며 16세기 제네바 사회가 이를 지킬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자본을 투자해 신산업을 육성하려는 열성도 보였다. 칼뱅은 1540년대 제네바 시의회가 섬유업을 지원토록 로비 활동을 했다. 당시 자본주의의 흐름을 파악해 이를 촉진·확산하는 데 큰 공로를 한 것이다. 저자가 칼뱅주의를 ‘그 영향력과 침투력 면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견줄 만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새삼스러운 건 칼뱅이 우주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극장’이라고 표현한 점이다. 칼뱅은 자연과학을, 창조세계에 깃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특히 천문학과 의학을 칭송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주로 관심이 있으므로 그 지식을 알게 된 뒤에는 거기서 멈추고 더 많을 걸 배우길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1534년 판 신약성경 서문에 담긴 칼뱅의 의견이다.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저자 맥그래스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칼뱅이 동시대 추종자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더라면, 현대 서구 문화의 중심축 중 하나인 ‘종교와 과학의 갈등’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진화론 논쟁도 전혀 다른 과정을 밟았을 것이다.”

업적만 나열한 건 아니다. 저자는 칼뱅주의 노동관과 예정론으로 기독교인의 소명 의식이 강화됐지만, 북미의 ‘번영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하나님이 부를 허락한다는 개념은 미국의 부호 존 록펠러와 앤드루 카네기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칼뱅은 제네바 어딘가 비석도 없는 무덤에 조용히 묻혔다. 그럼에도 그의 사상과 그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역사적 서술과 신학적 해설을 훌륭하게 결합한 책이다.… 덕분에 우리는 칼뱅을 조금은 더 잘 알게 될 것이다”는 존 뮤터 미국 리폼드신학대 교수의 상찬에 공감이 간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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