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출판 시장이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그런 현장에서 격주로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20년 넘게 펴냈으니 이 정도면 됐다고 여겼다. 남자는 오는 11월 20일 나올 기획회의 500호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호”라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런 결심을 전하니 안타까워하는 출판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밑줄 그어가며 기획회의를 공부했다고, 어떤 방식으로든 잡지가 연명하게 돕겠다고, 기획회의를 계속 내달라고 요청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답지했다. 결국 남자는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획회의를 500호 이후에도 계속 내기로 결심했다.
이 같은 사연의 주인공은 바로 한기호(61)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연구소를 찾아가 한 소장을 만났다. 그는 “기획회의를 폐간하려고 했는데 ‘저항’이 너무 거셌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광고를 유치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잡지를 만들고 싶다”며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기획회의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작과비평사(창비) 영업부에서 일하던 한 소장이 퇴사를 결행해 기획회의를 창간한 건 99년 2월이었다. 도서 도매 유통사 ‘송인서적’을 위탁 경영하던 시절이었다. 기획회의는 창간 당시 ‘송인소식’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세상에 나왔다. 무가지였던 송인소식을 유료로 전환하고, 제호를 기획회의로 바꾼 건 2004년이었다. 출판계 이슈와 출판 노하우를 전하던 이 잡지는 ‘출판계 나침반’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출판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전까지는 출판업에 뛰어들어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참고가 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기획회의는 출판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말하는 ‘팩트’를 전하곤 했죠. 편집자들은 기획회의를 보며 다른 접근 방식이나 견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기획회의가 결호 없이 20년 넘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한 소장의 열정이었다. 그는 한때 원고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어 혼자서 한 달에 500매 가까운 원고(200자 원고지 기준)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획회의 500호에는 어떤 이야기가 실릴까. 한 소장은 “책의 본질을 묻는 좌담을 실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500호 출간에 맞춰 출판 시장의 역사를 정리하고 미래를 내다본 단행본들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1월 한 소장은 그동안 각종 매체에 발표한 글을 모은 칼럼 모음집 ‘책으로 만나는 21세기’를 출간했었다. 책에서 그는 창비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자신의 인생 1막으로, 기획회의를 펴내며 출판평론가로 동분서주한 지난 20년을 2막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바야흐로 펼쳐질 한 소장의 인생 3막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이른바 ‘독서모델학교’ 설립을 꿈꾸고 있었다.
“장서 30만권을 갖춘 ‘책의 바다’를 만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50명을 뽑을 거예요. 그리고 25명씩 2개 반으로 나눠 책을 읽고, 토론하고, 누군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하루가 끝날 때면 교사가 그날 공부한 책과 관련된 도서 30권을 소개하는 학교가 될 거예요. 이런 식으로 책을 100권 읽으면 누구나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동안 전개한 독서운동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거예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