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팀에 말했습니다. 윔블던까지는 버틸 수 있겠다고 말이죠. 끝내는 건 그때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영국 테니스의 간판 앤디 머리(33)는 올 시즌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첫 번째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의 개막을 앞둔 지난 1월 11일(한국시간) 멜버른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관절 부상으로 2017년 여름부터 급락세에 들어가 지난해 6월까지 1년을 쉬고 복귀했지만 부진에서 탈출하지 못하던 그였다.
머리 스스로 선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언급하자 사람들은 ‘끝났다’고 판단했다. 머리의 발언은 선수 생활을 윔블던이 열리는 올여름에 끝내겠다는 선언이거나, 혹은 선수 인생을 반년만 연장하고 싶다는 호소였다.
머리는 2010년대 노박 조코비치(1위·세르비아)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 로저 페더러(3위·스위스)와 ‘빅4’로 군림한 ATP의 강자였다. 그는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데자이루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에서 2연패를 달성한 금메달리스트다. 하지만 ATP에서는 만년 ‘4등’이었다.
견고한 ‘빅3’의 위상을 깨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그 결과는 골반과 다리를 잇는 고관절로 찾아온 부상이었다. 호주오픈을 마치고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 남자 복식으로 선수 생활을 연장하던 머리는 결국 윔블던에 출전하지 못했다. 8월 13일 미국 신시내티 마스터스에서 남자 단식에 복귀했지만 1회전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머리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로 재기를 노렸다. 남자 단식으로 복귀한 지 두 달을 넘긴 21일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린 ATP 투어 유러피언오픈 남자 단식에서 마침내 우승했다.
머리는 이날 결승전에서 스탄 바브린카(18위·스위스)에게 2대 1(3-6 6-4 6-4)로 역전승했다. 2017년 3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듀티프리 챔피언십 우승 이후 2년 7개월 만의 투어 정복이다. 머리는 경기를 마치고 벤치에 앉아 한동안 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수건을 걷어낸 머리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머리는 “모든 것들을 이겨낸 승리에 자랑스럽다. 이제 내 미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머리는 현재 ATP 투어 243위에 있다. 이번 우승으로 120위 안팎까지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빅3가 건재한 ATP에 다시 빅4 시대를 열어젖히기 위한 그의 발걸음이 팬들의 환호 속에서 시작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