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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장은수] 전문가가 되려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강의나 강연을 나가면 학생들이 종종 묻는다. 사회가 요구하는 각종 스펙을 쌓는 일은 열심히 하지만 그 스펙이 평생 소명이 될 만한 일과 얼마만큼 관련이 있는지, 또 직업을 얻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입문하기에 충분한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서 괴테는 청년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의 공영을 이룩할 수 있도록 청년의 역량 문제를 깊게 고민한다. “너 자신을 하나의 도구로 만들라.” 방황하는 청년 빌헬름을 향해 괴테는 장인적 전문성을 얻음으로써 사회가 자리를 내어줄 수 있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봉건 사회의 주된 특징은 신분의 세습이고, 또한 직업의 세습이다. 아버지 일을 아들이 저절로 물려받는 구조, 태어날 때 이미 평생의 일이 정해진 사회에선 청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장장이 스미스의 아들은 이미 대장장이 스미스이고 나무꾼 우드컷의 아들은 이미 나무꾼 우드컷이다.

근대 시민사회는 이러한 봉건 구조의 철저한 혁파에서 출발한다. 부모의 신분과 직업으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앞길을 선택할 자유야말로 개성의 기반이고, 자신의 개별성을 증명하기 위해 모색하고 고민하면서 영혼의 성숙을 시도하는 과정이 질풍노도의 청년기다. 이것이 수업이고, 수업의 결과로 한 청년의 내면에 쌓이는 것이 전인적 교양(Bildung)이다.

요즈음 일부 교수 집단이 갖가지 방법으로 논문을 위조하고 저자를 조작까지 해가면서 제 자식들 출세를 위해 나섰다. 지위의 세습을 노리는 봉건적 패악이고, 시민사회 전체에 대한 배신이다. 무참히 편법을 저질렀으니 저들은 편법의 노예가 되어 주위 편법에 눈감을 것이고, 부모가 행한 편법의 결과로 손쉽게 좋은 자리를 차지했으니 저들의 자녀는 또 다른 편법의 씨앗이 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그들이 대학에서 진리를 전하는 입술로 남다니,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도덕 파탄자의 세상이 아니라, 괴테가 말한 청년의 정상적 자기실현에는 ‘하고 싶다’를 ‘할 수 있다’로 바꾸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괴테는 이를 교육(Ausbildung, 양성)이라고 부른다. 접두어 Aus-는 ‘~로부터’라는 뜻이고, Bildung은 교양이다. 교육은 한 인간의 내면에 이룩된 교양(개성)을 발현하는 일이다. 방법은 거듭 시도하고 한 번 더 애쓰는 ‘반복’을 통해, 특정 능력을 자기 몸에 붙이는 것이다. 괴테는 “한 가지 손기술에 자신을 제한하는 일”이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한 가지를 해서 모든 것을 다하는 길”을 찾는 일이다. 청년의 잠재는 무한하지만 한 분야의 일에 자신을 제한하도록, 또 그 한 가지 전문적 일을 통해 자신의 개성 전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괴테는 이를 “죽어라. 그리고 되어라!”라는 시구로 압축한다.

전문가는 곁가지로 뻗어가는 제 관심을 억제함으로써 특정한 일에 힘을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실제로 세상 모든 일은 ‘할 수 있는 일’의 연속으로, 즉 수십 가지 실행동사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한 분야의 일을 구성하는 일련의 동사들을 찾아내고, 무수한 반복을 통해 하나하나 철저히 익힘으로써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은 던져지는 상황에 맞추어 남들이 어렵게 하는 일을 쉽게 할 줄 안다.

가령, 요리사는 만드는 요리에 맞추어 조리동사를 막힘없이 실행한다. 온갖 재료를 갈고 까고 쪼개고 찌고 바수고 썰고 두드려 적당한 상태로 만들고, 양념으로 맛을 끌어낼 것은 담그고 버무리고 비비고 절이고 무치며, 익혀서 맛 낼 것은 굽고 찌고 끓이고 달이고 데우고 데치고 볶고 부치고 삶고 쑤고 조리고 지질 줄 안다. 세상 모든 요리는 결국 이와 같은 수십 가지 조리동사의 조합일 뿐이다. 어떠한 골목식당에 가더라도 백종원이 빠르고 기꺼이 주인에게 조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모든 동사를 정복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특정 분야를 이루는 실행동사를 얼마나 아는지, 그중 몇 가지에 익숙한지 살펴보라. 또한 과제가 주어졌을 때 이들을 얼마나 잘 조합하고 결합할 수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라. 그러면 자신이 그 일에 정말 맞는 사람인지, 또 자신의 전문성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 당신은 전문가인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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