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이던 소녀는 달리기를 잘했다. 100m를 14초대에 주파했다. 교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계주 주자였다. 전학을 가서도 마찬가지. 학생들은 자주 달리기 시합을 벌였는데, 소녀는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일등 스프린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최강자로 평가받던 친구가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계획은 어긋났다. 거듭 대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싫다고 했잖아. 다른 반 남자애들도 잔뜩 구경 온다며.”
“싫다면 할 수 없지. 그런데 남자애들이 구경 오는 건 왜 싫은데?”
“놀린단 말이야. 가슴이 흔들린다고 놀린다고!”
소녀는 친구의 말이 무슨 뜻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다른 친구와의 시합에서 갑자기 ‘가슴 이야기’가 떠올랐다. 소녀는 자신의 가슴이 달릴 때면 세차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모두가 자신의 가슴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달리다 보니 시합에선 질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이때부터 더 이상 달리기를 즐길 수 없게 됐다.
“당시 나를 멈추게 한 건 흔들리는 가슴이 아니라 가슴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이었다. 여성의 몸은 ‘아직도’ 전쟁터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성들이 점점 포기나 극복보다는 저항과 연대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디 여자들의 ‘달리기’가 멈추지 않기를. 위대하고 용감한 싸움을 시작한 여자 선수들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 페미니즘
소녀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 흔들리는 가슴이 부끄러워서 달리기에 흥미를 잃었던 소녀는 훗날 어기찬 페미니스트로 성장했고 반짝이는 글들을 쏟아냈다. 1990년대에는 PC통신 나우누리에서 여성모임 ‘미즈’ 운영진을 맡았고, 2000년대에는 여성주의 네트워크 ‘언니네’ 편집팀장으로 활동했다. 이름은 권김현영. 한국의 페미니즘을 다룬 책들에 공저자로 자주 이름을 올렸던 그는 이제야 첫 단독 저서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를 발표했다.
‘다시는…’에는 저자가 2003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매체에 발표한 글들이 담겼다. 우선 짚고 넘어갈 부분은 글들을 발표한 시점을 일별했을 때 미묘한 ‘공백기’를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략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인데, 이유는 청탁이 끊긴 탓이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여성 이슈를 다루는 지면이나 코너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던 때였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의 성차별 수준이 누그러진 건 아니었다. 장자연 사건이 터진 것도, 검사들이 대규모 성 접대 파문에 휘말린 것도 이 시기였다. 당시에 “없어진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 성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들”이었다.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다시 힘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2015년, 혹은 그 이듬해부터다. 한국 사회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 ‘버닝썬 사태’ 등 여성의 신산한 현실을 드러낸 사건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저자는 이들 사건은 물론이고 2000년대 초반부터 여성 문제를 놓고 벌어진 기이한 갑론을박의 풍경을 면밀히 살피는데, 책을 읽으면 21세기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를 개관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안티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여성이 처한 현실에 둔감하고, 이들의 논리는 얼마나 앙상하고 얄팍한지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2017년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성 문제를 놓고 벌어진 한 방송사의 대담을 다룬 글을 보자. 대학의 화학과 교수라는 남성은 난생처음 생리대를 뜯어보았다면서 착용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신비한 외계 물질에 대한 이야기처럼” 이 문제를 다뤘다. 그런데 대담 내용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들이었다. 저자는 “이 모든 일련의 사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미래로 보내고 싶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다만 미래의 관객에게 이것은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당시에 여자들은 모두 생존해 있었고, 말하고 쓰고 읽을 줄 알며, 남자들과 동등하게 고등교육을 받았던 시절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날카롭게 독자의 가슴을 파고드는 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령 밀리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다루면서 ‘단 하나의 문장’으로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라는 주인공 대사를 언급하는데, 저자는 이 문장이 “한국 여성들에게 지금 처한 현실을 매우 명징하게 자각하게 하는 언어적 방아쇠였다”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어머니도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가부장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여성이 몰두할 필요가 있겠냐고 되묻는다.
과거 펴낸 책에서 온갖 ‘여혐’의 언어가 뒤늦게 발견돼 입길에 오르내린 탁현민이나 홍준표를 다룬 대목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여성 문제는 “무지의 특권이 지배하는 영역”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이게 성차별과 남성 특권의 문제가 아니라 인종차별 문제였다면 어땠을까. 친일 행위를 옹호하거나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발언을 했더라도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을까.”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
젠더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 문제는 가장 민감한 이슈다. 지난해 12월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발표한 ‘공동체 갈등 관련 조사’ 결과를 보자.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 1위는 빈부 갈등(35%)이었다. 한데 세대별 결과에서는 이색적인 지점이 있었다. 20대 조사에서는 성 갈등(57%)이라고 답한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20대와 30대 남성은 각각 76%, 66%가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많은 남성은 페미니스트들이 지나치게 강퍅하고 예민하다고 여긴다. 피해의식이 강한 이들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런데 이때의 피해의식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피해의식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전제 조건을 알아야 한다. ①피해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니다. ②피해자는 문제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없다. ③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서 공감을 받을 자격이 있다. ①~③번을 두루 헤아린다면 더 이상 페미니스트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고 낮잡아볼 수 없게 된다. “없어져야 할 것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일 테니까 말이다.
어쩔 도리 없이 밑줄부터 긋게 되는, 페미니즘의 가치를 전하는 문장도 한두 개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목표는 권력을 남성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의미를 바꾸는 데 있다” “페미니스트란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 알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여성인권운동이야말로 인간의 조건과 개념 자체를 질문하고 재구성하는 가장 혁명적인 휴머니즘이자 급진적인 인권운동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점가에는 페미니즘을 다룬 책이 쏟아져 나왔다. ‘다시는…’를 최고의 페미니즘 교양서라고 치켜세울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페미니즘의 성공이 더욱 나은 세상을 만드는 요술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해준다. 이런 표현이 실례일 수 있겠지만, 이 책은 통렬한 비판과 엄정한 논리 덕분에 매우 ‘재미있게’ 읽히는 금주의 책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