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405장(통 45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38~42절
말씀 : 사람들은 일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직위와 직분을 가졌는지, 그에게 맡겨진 일의 경중이 어떤지가 자신의 자존감의 근거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눈에 보이는 성과로 자신의 존재감을 찾으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독교는 내가 하는 일보다 나를 위해 예수님이 하신 일이 핵심입니다. 이 분명한 기초 위에서 봉사도 예배도 가능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신자의 정체성을 찾는지 질문을 던져줍니다.
먼저 일 중심의 신앙은 위험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베다니 마을로 찾아온 예수님을 앞장서 모시고 온 사람이 마르다입니다. 오라비인 나사로도 있고 동생 마리아도 있지만 늘 주도적으로 일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마르다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모신 후 그를 섬기고 대접하겠다는 마음에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와는 달리 주님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발견합니다. 동생도 너무하지만 그런 동생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 서운함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주님 앞에 당당히 요구합니다.
그녀는 자기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부각합니다. 예수님의 인정을 원합니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늘 ‘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신앙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지나쳐서 내 일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멈춰 세우기까지 합니다. 일 중심으로 살다가는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는 위험까지 도달함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매우 안타까이 여기신 것 같습니다. 그를 대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그녀를 꾸짖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예배에 대한 분명한 자세가 없음을 지적하십니다. 지금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는데 그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집을 방문하셨는데,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접은 그 말씀을 기쁘게 듣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접대는 누군가에게 맡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는 위임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직접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배드리는 최고의 접대를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주를 위해 일하려고 하지만 주님은 한적한 곳에서 나와 함께 쉬자고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한 주 동안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고 지쳐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과거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초청하십니다. 좋은 편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 사역으로 지친 제자들을 광야로 이끌어 쉼의 자리를 일부러 마련해 주신 주님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주일이라는 ‘안식의 날’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 영적인 형제자매인 성도들과 교제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일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의 빛을 통해 나는 치유되고 회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 : 주님, 맡겨진 일과 사역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늘 깨어있도록 도우소서. 내 모든 시간 속에서 예배를 최우선으로 삼아 구별된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속에서 영적으로 성장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성준 목사(인천 수정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