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대형교회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정리한 뒤 남은 문제는 이웃 목회자에 대한 시기심이었다. 한밭제일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웃 교회 목회자에 대한 시기심이 발동했다. “주여, 제 안에 하나님 나라 동역자에 대한 시기심을 없애 주소서!”
아무리 기도해도 좀처럼 이 시기란 녀석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데 속이 다르니 죽을 맛이었다. 주님 앞에선 죄송하고 나 자신에게는 실망스러웠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시기심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한 후에 말씀을 펼쳤다. 창세기를 읽는데 12장 3절에 멈췄다. 주님이 말씀을 통해 나를 찾아오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아, 맞다!’ 마음속이 쿵 울렸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으셨다. “네가 시기하는 옆 교회 목사가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제가 시기하는 목사들이 아브라함이라고요?’ 동시에 성령께서 흐릿했던 내 영안(靈眼)을 어루만지셨다. 말씀에 대해 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 난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내 영에 굉장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엄청난 영적 세계가 들어 있었다니. 내가 이렇게 우매한 짓을 하고 있었다니.’ 내 무지몽매함에 울었고 내 시기심의 결과를 생각하며 두려워 부들부들 떨었다.
아브라함 시대에 지구촌에 얼마의 인구가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하나님은 그중에 단 한 사람, 아브라함을 독점적으로 선택하셨고 이런 약속을 주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하나님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됐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을 축복했을 때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그럼 반대 이야기를 해보자. 누군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을 저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군가 내 사랑하는 자녀를 귀히 여겨 사랑해 주고 축복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반대로 누군가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 정죄하고 시기하고 인상 쓰고 제발 안 되기를 바라고 저주한다면 어떻게 대할까.
영안이 열리니 나는 하나님의 복과는 거리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내가 시기했던 목사님들이 누구였는가. 그들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분명 나보다 행정 설교 심방 상담 등 모든 것을 잘하는 분들이었다.’
하나님이 그 목사님을 나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두 가지 결단을 했다. 첫째, 하나님을 노엽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분들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는 분들이고 그분들을 시기하면 하나님이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었다. 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했다. 그러기에 절대로 시기하지 않으리라 결단했다.
둘째, 무슨 일이 있어도 복을 받아야 했다. 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목사님을 축복해야 했다. 내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분들을 시기하고 그분들이 잘 안 되기를 바라고서야 절대로 복을 받을 리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내 영은 덩실덩실 춤추고 있었다. 쉽게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일거양득의 복을 안고 날 찾아오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시기심 때문에 아파하던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복 받는 비결까지 안겨 주셨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거룩한 작전에 돌입했다. 우선 대전의 대형교회와 목회자명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명단을 외울 때까지 큰 소리로 축복하며 기도했다. 새벽이든 언제든, 기도하려 무릎을 꿇으면 제일 먼저 대전의 대형교회를 축복했다. 상위 10위에 들어가는 교회를 위해서는 더 큰소리로 축복했다.
“주여, 대전 OO장로교회, 대전 OO감리교회, 대전 OO성결교회, 대전 OO순복음교회, 대전 OO침례교회가 갑절로 부흥케 하소서. 김 목사님, 이 목사님, 박 목사님, 정 목사님을 축복하소서. 복에 복을 더하소서. 저보다 더 큰 복을 받게 하소서.”
처음엔 억지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재미가 있었다. 우선 축복하니 내 영이 성령님이 주시는 즐거움으로 충만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대형교회를 보면 즐거웠다. 새벽마다 밤마다 축복하는 교회를 보니 친근했다. 자연스럽게 축복의 손이 올라갔다. “대전 OO장로교회를 축복합니다. 김OO 목사님, 엄청난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서너 달 축복하고 나니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날도 대형교회와 목사님을 축복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마음속 공간이 보였다. 그 안에 대전의 큰 교회들이 들어앉아 있었다. 당시 한밭제일교회는 이름 없는 초라한 교회였다. 주택가 안에 들어앉아 있어 노회 목사님 30여명을 제외하고는 아는 분도 없었다. 그런데 그 작은 교회의 별 볼 일 없는 목사의 마음 공간에 대전에 대형교회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다.
그때 믿음으로 확신했다. “그래, 지금은 한밭제일교회가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지만 언젠가 이름대로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