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잘 안 오시죠.”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빌딩 연구실에서 만난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우리나라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안겨 준 통계 수치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통계청의 ‘2018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의 자살 사망자는 1만3670명이다. 전년 대비 1207명(9.7%) 증가한 것으로 하루 평균 37.5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전 센터장은 기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해 자살 사망자 수는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 관람석을 대부분 채울 수 있는 숫자”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표준인구로 계산한 ‘연령표준화 자살률’로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자살률(24.7명)은 OECD 36개 국가 중 1위다. 2005년 이후 불명예스러운 1위를 지키던 한국은 2017년 리투아니아에 이어 2위로 낮아졌지만 1년 만에 다시 OECD에서 가장 높은 국가가 됐다.
전 센터장은 더 심각한 문제를 얘기했다. 자살은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4인 가족이라면 자살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연간 5만~6만명이나 됩니다. 여기에 자살 시도자, 가족 외 친구 등의 지인까지 영역을 확대하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 대비 100명 중 1명꼴로 자살에 따른 고통을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 센터장이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보다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이라는 타이틀로 더 활발히 활동하는 이유다.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은 전문가가 자살 사망자의 유족과 면담해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끼쳤을 다양한 요인을 살펴보고 고인의 삶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2014년 보건복지부가 자살자의 사망원인을 분석하고 유가족의 심리지원을 하기 위해 설립했다. 자살예방책을 수립하는 게 목표다.
전 센터장은 “심리 부검을 위해 면담해보니 유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다”면서 “교통사고나 질병과 달리 사망의 원인이 불분명하다 보니 누가 잘못했는지를 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 유가족 중에는 죄책감에 빠져 외출하지 않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죄의식 속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서양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반면 동양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과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해요. 이게 좋은 점도 있지만, 모두가 침울해지면서 갈라파고스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어요. 서양에선 자살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동양에선 한 명이 사망하면 가족과 친구까지 영향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죠.”
전 센터장은 심층 연구를 통해 자살의 원인이 다양함을 확인했다. 보건복지부와 함께 자살 사건 전수조사를 통해 지난 9월 내놓은 ‘2018 자살실태조사’가 근거다. 극단적 선택에는 건강이나 심리상태, 경제적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살했고 그 집에서 쌓인 고지서를 발견했어요. 그러면 ‘돈을 낼 여력이 없어서’라는 경제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겁니다. 하지만 이를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지역이나 주거 형태도 자살에 영향을 줬다. 서울시가 2013년부터 5년간 자살사망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서울시의 자살사망은 구별로 자살 사망률 및 장소, 방법에서 차이를 드러냈다. 영등포구는 공공장소, 중구와 종로구는 숙박업소에서 자살이 많았다. 노원구에서는 투신, 관악구와 은평구는 가스중독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자살의 이유와 원인이 다양한 만큼 특정한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자살 예방에 한계가 있다. 고립되고 단절된 삶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고 전 센터장은 강조했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려준 건 한때 높은 자살률로 고민하던 일본이다. 일본은 각종 공동체 모임을 활성화해 이를 극복했다. 한국에서도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문만 잠그면 ‘고립되는 섬’ 같은 한국의 주거 특성을 극복하려면 지역 사회가 고립된 사람을 찾아 치료하고 도움을 줘야 한다.
전 센터장은 이 같은 역할을 할 곳 중 하나로 교회를 꼽았다. 교회에선 소속감을 갖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봉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교회가 고민을 털어놓는 창구 역할도 할 수 있다. 교회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과거 지도자의 조건은 강하고 모든 걸 견디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상호 소통하며 감성적 교감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목회자 등 교회 지도자들은 누구보다 그런 부분에 있어 강점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마음에 품은 이들에겐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도움받는 것도 기술입니다. 누군가 내 어려움을 알아서 도와줄 것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건강한 만남을 통해 어울리며 감정을 교류한다면 극단적 선택은 충분히 피할 수 있습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