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던 문화를 떠나 다른 문화를 접하면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복음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에 전달하면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이는 복음 안에 독특한 문화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행위의 학습된 패턴’이다. 따라서 그 문화 속에 사는 사람은 인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그 사회 안에서 배워온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복음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지속해서 문화적 적응에 관한 예를 보여준다. 애굽의 삶이 그랬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할 때도 여러 다양한 이방 민족을 거쳤다. 이방 문화 가운데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도 보여줬다. 바벨론의 포로가 됐을 때도, 헬라와 로마 문화를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새롭게 도전해 오는 문화적 물결 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직간접으로 보여줬다.
성경에 나타난 히브리 문화는 단순히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그들만의 문화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의 삶의 상황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시고 세밀하게 그들의 문화를 지속시켜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셨다.
환경적 문화요소와 초문화적인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문화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보여줬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시고, 창조의 목적에 따라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실재임을 증명한다.
성경 관점에서 볼 때, 문화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문화든지 성경적 세계관과 충돌하며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어느 문화에서든지 죄악된 요소는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므로 언제나 복음을 통해 문화를 판단해야 하며, 때론 복음에 의해 그 문화가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다른 피조물을 창조하셨을 때, 모든 것을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1)고 말씀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문화적 명령(cultural mandate)의 권한을 부여해 주셨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타락하면서 그 흔적은 모든 문화 속에 자리 잡았다. 홍수를 통해 죄악된 인간과 그 문화가 징벌을 받았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하나님으로부터 약속과 사회적 위임(social mandate)을 동시에 부여받았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이런 사실을 바로 인식해야 문화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바르게 가질 수 있다. 그래야 바른 신학을 이루는 근간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해야 복음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인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접근방법의 기초가 된다. 다시 말해 복음을 바로 이해해야 비로소 문화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형상만 훼손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이 닿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롬 3:9)고 말씀한다.
타락한 인간과 문화를 새롭게 회복시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복음의 전달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복음의 위임’(the Gospel Mandate)을 받은 사람들이다.
죄악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화는 복음의 가르침을 통해 새롭게 변화돼야 한다. 이는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새롭게 변화돼야 할 문화적 요소를 발견하고 성경적 관점에서 바꿔 가는 것이다. 다른 문화에서 복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서 직간접으로 이런 과정에 참여한다.
비그리스도인의 삶의 틀 안에서, 관습과 예식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한 우상의 길을 따르게 돼 있다. 반면 복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잘못 가고 있는 방향에서 하나님께로 되돌아올 것을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것이 도래했음을 복음을 통해 알려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왜곡되고 잘못된 문화를 새롭게 하고 다시 세워나갈 수 있음도 전해 줘야 한다. 그리스도만이 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능력자이심을 알게 해야 하며, 이전 것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면 본질의 전달 자체가 잘못된다. 이처럼 문화를 모르면 복음의 전달이 온전하게 되지 못한다. 복음과 문화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전달과정에서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초문화적인 요소를 바로 견지해야 한다. 특히 복음의 전달자는 상대방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급변하는 문화의 도전을 받는 상황 가운데 적용점을 찾아야 한다. 사도행전을 비롯해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는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열쇠가 들어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