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캡(Salary Cap)이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이슈를 던졌다. 지난달 28일 이사회에서 자유계약선수(FA) 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샐러리캡 도입도 함께 천명했다. KBO 이사회는 지난 8월 외국인 선수 샐러리캡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구단 전체 연봉에 대해 공식 제안하기는 처음이다. 이에 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FA제도 개선안은 수용하겠다면서도 샐러리캡 수용은 유보했다. KBO 제시안을 본 뒤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샐러리캡은 FA제도 개선과 직접 맞물려 있어 도입 불발 때는 모든 개선안이 파기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내년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 메가톤급 폭탄이다.
NBA서 처음 도입
샐러리캡은 한 구단의 선수 연봉 총액을 일정 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처음 도입됐다. 미국풋볼리그(NFL)도 활용하고 있다. 재정이 탄탄한 구단이 최고 선수들을 독점하는 것을 막아 구단 간의 전력 격차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한국 프로스포츠의 경우 남녀 프로 농구와 배구에서 샐러리캡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올 시즌 남자 프로농구의 샐러리캡은 25억원, 여자팀은 12억원이다. 프로배구의 경우 남자는 26억원, 여자부는 14억원이다. 선수들의 몸값을 이 금액 안에 맞춰내야 한다. 이른바 ‘하드캡’이다. NFL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 사치세 활용
메이저리그(MLB)는 기준 금액을 넘기면 제재금을 가하는 이른바 ‘소프트캡’을 활용하고 있다. 균등경쟁세금(Competitive Balance Tax)으로 불리는 사치세를 부과한다. 실제 세금이 아닌 야구발전기금 성격의 제재금이다.
총액 상한액을 구단이 처음 위반할 경우 초과액의 17.5%, 두 번째 위반하면 30%, 세 번 이상 위반하면 50%의 세금을 낸다. 또 초과액이 4000만 달러를 넘으면 42.5%를 부가세로 추가 납부해야 한다. 이듬해에도 4000만 달러 이상을 쓰면 45%의 세율이 매겨진다.
상한액은 40인 로스터의 연봉 총액을 기준으로 한다. 지난해에는 1억9700만 달러, 올해는 2억600만 달러, 내년에는 2억800만 달러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올해 최고 연봉 구단은 보스턴 레드삭스다. 레드삭스의 연봉 총액은 2억2300만 달러(약 2407억원)다. 2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2억300만 달러·2191억원)다. 두 구단은 샐러리캡을 넘어선 만큼 사치세를 냈다. 최근 15년간 가장 많은 사치세를 낸 구단은 뉴욕 양키스로 3억4100만 달러(3666억원)를 냈다. 양키스가 돈으로 좋은 선수를 싹쓸이하는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전력 불균형 해소 도움
샐러리캡을 도입하면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무차별적인 선수 영입을 막음으로써 전력 평준화에 보탬이 될 수 있다. ‘돈의 야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각 구단의 회계 건전성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최고 연봉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는 매년 100억원 이상을 연봉으로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올해 10위 꼴찌를 했다. 구단 운영의 비효율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반면 56억여원의 키움 히어로즈는 한국시리즈에까지 진출했고, 47억여원으로 연봉 최소 구단인 KT 위즈는 6위를 차지했다. 샐러리캡이 도입되면 큰 그림 속에 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계약 투명성 담보 전제
프로야구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샐러리캡은 메이저리그를 본딴 소프트 캡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사치세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많아 새로운 명칭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상한선 기준은 윤곽이 잡혀 있다. 올 시즌 개막 전 10개 구단의 평균 연봉 총액은 75억여원이었다. ‘한국형 샐리러캡’의 상한선 기준이 될 수 있다. 여기에다 물가 인상률 등을 첨가해 상한선을 정하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한선이다. 하한선을 정하지 않을 경우 저연봉 선수들이 속출할 수 있다. 하한선인 이른바 소진율을 정해야 한다. 프로배구 한국전력은 올해 상한선의 48%밖에 소진하지 않아 제재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프로배구의 최소 소진율은 70%다. 프로야구에도 비슷한 수준에서 이를 도입하는 게 맞다.
그리고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동이 확대되어야만 샐러리캡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 FA에 따른 보상 제도 전면 개편이 절실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구단이 소속 선수들의 몸값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연봉뿐만 아니라 옵션까지 공개해야만 샐러리캡이 실효성 있게 정착될 수 있다. 한 프로스포츠의 경우 샐러리캡을 피하기 위해 연봉보다 옵션을 더 많이 주는 경우가 있었다. 샐러리캡에 옵션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구멍을 활용한 것이다. 옵션까지 포함한 구단의 연봉 총액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경우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신인지명권 박탈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 사치세 형식의 한국형 샐러리캡은 이에 부합한다. KBO와 선수협이 한발짝씩 물러서 논의를 이어간다면 빠른 시일내 도입이 가능해 보인다.
김영석 선임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