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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피맺힌 소원 이뤄드리자”… 전도하러 뛰쳐나가

안호성 울산온양순복음교회 목사(오른쪽)가 2012년 4월 부산 포도원교회에서 열린 국민일보 주최 성령바람 전도축제에서 김문훈 목사와 함께했다.


안호성 목사


2010년 울산 울주군으로 교회를 이전했지만, 목회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혼자 개척해서 6년 만에 교회를 이전하고 건축까지 했다. 120여명의 성도가 모였는데, 이들과 다시 개척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지루한 정체가 이어졌다.

그때까지 우리교회의 별명은 ‘전도도 안 하는데 부흥하는 교회’였다. 누군가 우연히 들렀다가, 말씀 듣고 6개월쯤 새벽기도와 수요예배를 드리다가 옮기는 구조였다. 그런데 새로 옮긴 교회가 외곽의 너무 후미진 곳에 있었다. 가로등도 설치되지 않아 컴컴했다. 우연히 지나치다 들어오긴커녕 일부러 찾아오기도 힘든 곳이었다. 한동안 성도가 불어나던 패턴이 와르르 무너졌다. 금식하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참석했던 ‘성령바람 전도세미나’에서 큰 은혜를 받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 전도는 교회의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누가복음 15장 예수님의 설교처럼 잃어버린 아들, 탕자를 찾아 헤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피맺힌 소원이다.’ 이전 성경 지식으로, 이성으로 알았던 그 내용이 이제는 하나님의 찢어지는 아픔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피맺힌 소원을 풀어드리는 곳이 교회이며, 아버지의 은혜를 알고 갚는 자들이 바로 성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울산온양순복음교회 목회 현장을 보니 실체가 보였다. 기적과 같은 은혜로 구원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이긴 했다. 하지만 자기들의 영적 코드에 맞는 신선한 말씀을 찾아 몰려든 친목 모임 같았다. 몇 대째 신앙인들의 영적 유희의 장소, 영적 유람선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 이것이 문제다. 교회는 절대로 유람선이 돼서는 안 된다. 교회는 죽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기적과 같은 은혜로 구원받고 살아나 말씀의 은혜로 인공호흡 받고 정신을 차리는 곳이다.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들은 사망의 음침한 바다에서 빠져 죽어가던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 구조선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교회는 영적 유희를 즐기는 파티장이나 신앙의 놀이터가 돼 버렸다. 전도의 열정을 품는다고 해도 교회 성장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이는 결코 건강한 전도의 정신이 아니었다. 자식을 잃어버리고 자식의 생명을 걱정하며 찾아 헤매는 아버지를 돕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다. 만약 그 앞에서 잃어버린 자녀(미아)에게 걸려있는 보상금에 집착하고 시늉만 낸다면 인간도 아니다.

‘그래, 이제부터 하나님의 피맺힌 소원을 이뤄 드리는 목사로서 이 교회를 이끌겠다. 그래서 매 주일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아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겨드리고 주님이 춤추시게 하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하겠다.’

곧바로 새벽기도 때 그 감동을 설교로 전했다. 그리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새벽기도회 후 전도하러 뛰쳐나갔다. 아직 날도 제대로 밝지 않은 미명이었다. 마음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고, 마침 그날은 장날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철이라 선거운동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나와 자기 후보를 홍보하고 있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정치적 신념, 혹은 아르바이트비 몇 푼 때문에도 저렇게 열심히 한 사람을 알린다. 그런데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데 얼마나 열심을 냈던가.’

선거운동원에게 다가섰다. “울산온양순복음교회 목사입니다. 제가 당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찍어줄 테니 여러분도 우리 교회 한번 오세요.” “좋습니다.” 그렇게 운동원 중 2명에게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장터에 있는 상인과 사람들에게 전도를 이어갔다. 그날 울산에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 비닐하우스가 찢기고 간판이 떨어질 정도였다. 비바람을 맞으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전도했고 10명으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았다.

목사 아들로 태어나 전도라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였다. 숫기가 없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고 말을 거는 일을 죽기보다 더 싫어했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나가 밥 한 끼도 안 먹고 밤늦게까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다. 목사가 그렇게 변하고 미친 듯이 전도하러 다니자 성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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