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빛과 소금-노희경] 선한 오지랖



“기적이 어딨어요? 제 거지 같은 인생에 그딴 거 없어요.” 지난달 막을 내린 화제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여주인공 동백(공효진)이 의식 없는 상태로 죽을 날을 받아놓은 듯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이정은)를 보며 힘겹게 꺼낸 말이다. 동백은 절망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죽이고 살리는 거야 하늘이 정하는 건데 뭐, 그 직전까진 사람이 좀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원래 이 대한민국이 한 다리 건너 형 누나 동생이고, 약간 오지랖으로 굴러가는 민족이다”라는 감칠맛 나는 대사와 함께 동백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구는 국내 최대 의료장비를 갖춘 구급차를 빌려와 동백과 엄마를 싣고 대학병원으로 향한다. 신호등 한 번 걸리지 않게 조작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꽉 막힌 도로는 이내 홍해처럼 갈라져 구급차가 제때 병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누군가는 최고의 의료진에게 전화를 걸고 동백이 엄마의 수술을 부탁한다. 동백은 엄마와 생이별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를 아는 모든 이웃이 사돈의 팔촌까지 소환하며 인맥을 동원한다. 그렇게 동백의 엄마는 무사히 수술을 받았고 꿈을 꾸듯 깨어난다. ‘오지랖으로 굴러가는 민족’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기적이었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대사가 잊히지 않았다.

오지랖의 사전적 의미는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관용적 표현으로 ‘오지랖이 넓다’라고 쓰는데, 남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고 여기저기 참견하는 사람을 빗대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오지랖은 그리 좋은 표현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발견했다.

달리 말하면 오지랖이 넓다는 건 그만큼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다는 게 아닐까. 남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이해하니까 참견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데 무슨 참견을 하고 간섭을 하겠는가. 본래 우리네 정서가 그랬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서로 다 알 정도로 이웃 간 왕래가 잦았다. 담장이 있을지언정 대문은 활짝 열어 두고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수시로 기웃거리며 안부를 챙겼다. 앞집에서 김장한다고 하면 옆집, 건넛집에서까지 도와주겠다고 일부러 찾아왔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온 동네가 같이 알고 지냈다. 오지랖이 10폭 이상은 되는 민족이었다. 한마디로 정, 사랑이 차고 넘쳤다. 다만 이웃 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만 잘 지킨다면, 예의만 갖춰준다면 오지랖은 얼마든지 넓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 선한 ‘오지라퍼’가 모인다면 굳이 동백이 이룬 판타지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따뜻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의 유명한 비유의 말씀이 나온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옷이며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쓰러져 있다. 때마침 신앙심 깊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잇따라 지나간다. 모두 모르는 척하고 사라진다. 또 한 사람, 사마리아인이 지나간다. 여행 중이던 그는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이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씻어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가까운 여관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주인에게 넉넉히 돈까지 주며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비용이 더 들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급하겠다고까지 약속한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민족이었다. 자신이나 챙길 것이지, 진짜 오지랖 넓은 선한 사람이었다. 예수님도 그래서 말씀하셨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너희도 이런 이웃이 돼라.”(누가복음 10장 36~37절)

올 연말에는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정을 나눠보면 어떨까. 빨간색 구세군 자선냄비가 펄펄 끓을 수 있도록, 추운 날 손을 호호 불며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기사에게 따뜻한 차 한 잔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자. 주변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는지, 몸이 아픈 이웃은 없는지 살펴봤으면 한다. 미자립·개척교회들이 ‘불 꺼진 성탄절’을 보내지 않도록 관심을 쏟아보자. 나아가 지구촌의 굶주리는 힘겨운 어린이들을 더는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적을 선물하는 따뜻한 연말연시가 됐으면 한다. 선한 오지랖을 넓혀보자.

노희경 미션영상부장 hkroh@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