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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인격은 하나” 생명은 거기서 출발한다

낙태 합법화에 반대하는 이탈리아인 시위대가 2013년 1월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1973년 내린 이 판결은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게티이미지




‘네 몸을 사랑하라’ 저자 낸시 피어시. 낸시 피어시 페이스북


“원나이트 스탠드가 왜 나쁘죠.” “동성애는 정말 옳지 않은 건가요.” “낙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겁니까.”

신간 ‘네 몸을 사랑하라(Love The Body)’는 우리가 자주 주고받는 이런 질문들에 기독교적 관점에서 속 시원하게 답해주는 책이다. 현대 문화의 저류가 되는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기독교적 인간관을 사례를 들어 생생하게 제시한다.

부제는 ‘성과 생명에 대한 도전과 기독교 세계관의 답변’이다. 저자는 ‘완전한 진리’ ‘완전한 확신’ 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미국 복음주의 작가 낸시 피어시다. 피어시는 먼저 성과 생명에 대한 현대적 이해의 원인인 ‘이층적 인간관’을 비판한다. 이 인간관은 몸과 인격의 분리를 전제한다. 하층부의 경험 과학으로 몸을 정의하고, 상층부의 가치 기준으로 인격을 규정한다.

피어시는 이런 파편화된 인간관이 몸과 자아를 분리해 사랑 없는 섹스를 예찬하고, 생명과 몸을 존중하지 않는 성문화가 범람하게 만든다고 진단한다. 감정 없이 성관계를 갖는 훅업(hook up)이 성행하는 미국 대학가에선 섹스 후 유대를 원하는 사람을 의존적인 사람이라 낙인찍는다. 훅업 문화는 성행위를 사랑과 분리된 신체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동성애 관계 실험이 통과의례로 번지면서 ‘졸업 전까지 레즈비언(LUG)’이란 속어가 생겼다. 내 몸의 형태와 관계없이 성적 정체성을 실험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낙태 합법화 논쟁도 그렇다. 아기가 수정 단계에선 인격이 아니지만 (인간이 정한) 어떤 시점에는 인격이라고 보는 것은 철저하게 이분법적인 인간관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동성애도 인간에 대한 분열된 관점과 몸을 경시하는 태도라고 비판한다. 생물학, 염색체, 해부학 상 남성과 여성은 서로 대응한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인간의 성과 재생산은 그렇게 설계돼 있다. 피어시는 인간의 몸에 내재된 하나님의 텔로스(telos·목적)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동성애 행위는 암묵적으로 우리 몸의 텔로스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한다.

과학적 근거도 풍부하게 제시한다. 훅업 문화를 비판할 때는 호르몬 분비 체계를 근거로 든다. 성관계 중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옥시토신은 어머니가 아기에 젖을 먹일 때 나오는 호르몬과 같다. 성관계 때 여성이 남성에게 애착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성관계 때 남성에게 분비되는 신경 화학 물질은 바소프레신으로 옥시토신과 비슷한 정서적 작용을 한다. 과학자들은 바소프레신이 여성과의 유대감을 끌어낸다고 믿는다. ‘일부일처제 분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결론적으로 아무런 감정 없이 훅업 관계를 갖더라도 애착과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다.

초대 교회가 강조했던 일부일처제는 당시로는 매우 급진적인 문화였다. 로마의 남성들은 성행위에 아무런 도덕적 제한이 없다고 여겼다. 남성이 여성과 소녀뿐만 아니라 소년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도 허용됐다.

초대 교회는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히 13:4)’ 성구처럼 성행위에 제약을 두지 않는 당시 문화에 맞섰다. 그 결과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고 노예와 어린이 등 약자들이 성적 포식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됐다. 문화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기독교는 그렇게 남성의 성을 통제했고 결혼에 사랑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기독교 윤리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어시는 하나님 형상대로 만든 우리 생명과 몸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하면 생명과 성의 문제에 답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과 정신은 분리돼 있지 않다. 우리가 몸에 대해 갖는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자세처럼 전인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몸을 사랑하고 이런 문화를 세상에 퍼뜨리면 몸과 인격을 분리하는 오늘날의 문화를 바꿔 갈 수 있다.

피어시의 견해는 현대 신학자 리처드 니버가 저서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설명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니버는 문화와 대립하거나 종속되기보다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했다.

책을 읽으며 이층적 인간관이라는 개념으로 복잡한 현대 문화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기독교 윤리를 절대화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폭넓은 지식과 문화적 이해, 풍부한 사례는 재미와 함께 깊은 통찰을 안겨준다. 생명을 전인적으로 이해하는 기독교 인간관이 현대의 단절적 인간관보다 더 호소력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어시의 말이다. “우리는 윤리적 황무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생명과 성에 대한 답을 간절히 구하고 있다.… 우리는 황무지에서 동산을 가꿀 수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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