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럿이 어울려 회사 근처 서울 여의도 포장마차에 들렀을 때다. 파랑 플라스틱 간이탁자 위에는 순대볶음 한 접시와 어묵탕 국물 그릇이 놓였다. 사람 수만큼 나무젓가락도 깔렸다. 문득 앞자리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언제 가장 행복해?” 평소라면 ‘뜬금포’ 질문이지만 연말에 늦은 밤이겠다 함께한 이들이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하나씩 답을 내놨다.
“지금이지. 일 마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술 한잔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때가 제일 좋지.”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 “식구들과 머리 맞대고 앉아서 숟가락 부딪히면서 밥 먹을 때?” 얼추 비슷한 답들이 이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답은 대체로 비슷한 모양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이들이 일상 속 행복으로 ‘가족·친구·연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를 선택했다. 이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취미생활을 같이할 때’를 꼽았다.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로 경제력, 가족, 취미생활을 순서대로 꼽았다. 이 세 가지는 좋아하는 이들과 뭔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조건이다.
실험으로도 어느 정도 입증된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경험추출법을 사용했다. 연구팀이 메신저를 지급받은 사람들에게 일주일 동안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를 받은 피험자가 그 순간에 하고 있던 일상적인 활동에 대해 기록하는 방법이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은 1년 동안 2300여명에게 경험추출법을 적용해 사람들이 평소 어떤 활동을 하고 그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가장 행복하게 느끼고 원하는 활동은 대화와 사교활동, 식사, 성관계로 조사됐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 측면에서는 취미활동이나 운동이 가장 큰 만족감을 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평범한 한국 사람들에게 그런 여가활동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우리 국민의 평일 여가시간은 3.3시간에 불과하다. 월평균 여가비용은 15만원이다.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고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다. 차 한잔이나 치킨 한 마리는 여러 면에서 부담이 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커피를 마시거나 ‘치맥’(치킨에 맥주)을 하면서 회포를 푸는 것이 가장 자주 하는 행복 추구 활동이 되지 싶다. 전국에 커피숍은 7만개가 넘고 치킨집은 9만개에 가깝다. 괜히 치킨집이나 카페가 많은 게 아닌 듯하다.
몇 해 전 친구에게 들은 어떤 수업 장면 얘기는 이런 여유를 보여줘서인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어느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가 탁자 위에 큰 유리 상자를 올렸다. 그러곤 돌, 모래, 흙을 순서대로 그 상자에 담은 뒤 커피 두 잔을 쏟아부었다. “만약 흙, 모래, 돌 순서로 담았다면 이 상자에 이걸 다 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유리 상자는 여러분의 인생과 같습니다. 돌은 사랑, 신앙, 가족과 같은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모래는 그보다는 덜 중요한 일, 집, 자동차 따위지요. 흙은 그보다 훨씬 덜 중요한 무언가입니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커피는 무엇인가요?” 선생은 답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커피는 여러분이 아무리 바쁘고 힘든 순간에도 친구와 커피 한잔은 마실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가끔 사람들과 나눈다. “내가 바쁘긴 한데 말이지. 그래도 너랑 커피 마실 시간은 있지!” 바쁜 중에 짬을 내 음료를 한잔 두고 서로의 얘기를 나누다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고민스러웠던 일의 실마리가 잡힌다.
친밀한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연스럽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비폭력 대화’를 주창한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는 경청과 공감만으로도 심리적 치유가 이뤄지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연말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하는 시간이다. 아끼는 사람들과 따듯한 차 한잔을 나누는 작은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강주화 온라인뉴스부 차장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