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꽉 막힌 강남대로. 갑작스럽게 시작된 지진이 평온을 깬다. 건물 통유리가 터지고 구조물들이 하나둘 추락한다. 진동하던 도로는 순식간에 뒤틀리고 휘청대던 고층 건물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대한민국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백두산 화산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영화 ‘백두산’의 오프닝은 야심차고도 강렬하다. 상상만 해봤던 백두산 화산 폭발의 순간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순간, 관객은 아찔한 불안감에 휩싸이며 이내 빠져들고 만다. 고도의 VFX(시각특수효과) 기술로 완성된 시각적 스펙터클이 할리우드 재난영화 못지않다. 충무로 대표 배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영화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백두산 1차 폭발로 북한은 물론 서울 도심까지 이미 폐허로 변해버린 상황. 세 차례 추가 폭발이 예고됐는데, 마지막 네 번째 폭발이 발생하면 한반도 전역이 쑥대밭이 된다.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백두산 지하 마그마방 인근에서 핵을 터뜨려 압력을 낮추는 것. 성공률은 3.48%에 불과하다.
지질학 교수 강봉래(마동석)의 이론에 따라 청와대 민정수석 전유경(전혜진)이 작전을 계획한다. 전역을 앞둔 폭발물처리반 조인창(하정우) 대위가 남과 북의 운명이 걸린 이 비밀작전에 투입된다. 작전의 키를 쥔 북한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이병헌)과 접선에 성공하지만, 자꾸만 돌발행동을 하는 그의 속내를 알 수 없다.
조인창과 리준평이 핵 기폭제를 차에 싣고 작전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여러 위기 상황이 이어진다. 폭발 예정 시간은 임박해오는데 리준평의 도발로 작전에 계속 차질이 빚어진다. 긴박감이 흘러넘쳐야 마땅한 시퀀스들인데, 좀처럼 긴장감이 붙지 않는다. 일반적인 재난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서사의 한계 때문이다.
이병헌과 하정우의 연기 호흡은 물 흐르듯 어우러진다. 농담을 던지다 순간 진지해지길 반복하며 곳곳에 유머까지 곁들이는 두 사람의 ‘능청’이 화산재로 뒤덮인 하늘처럼 갑갑했던 극에 숨통을 틔워준다. 미국·중국의 허술한 대응 등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서사가 몰입을 떨어뜨리는데, 그마저도 이들의 연기력이 설득력을 부여한다.
세세한 단점들이 이따금 눈에 띈다. 후반작업이 촉박했던 탓인지 일부 장면의 컴퓨터그래픽(CG)에서 이물감이 느껴지고, 편집상에도 어색한 부분이 있다. 만삭 임산부인 인창의 아내 최지영 역을 맡은 배수지의 연기는 상대 배우들과 완전히 뭉쳐지지 않는다. 신파적 마무리는 진부한 뒤끝을 남기는데, 남북 요원의 우정이나 부성애 같은 요소들은 대중적 감성을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스케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불꽃을 토해내는 백두산의 전경이라니. 제작비 260억원이 투입된 이 영화의 압도적 위용은 극장에서 마주해야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한강 해일이 서울을 덮치는 장면이나 북한 현수교 붕괴신 등도 인상적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연 ‘신과함께’ 시리즈의 제작사 덱스터스튜디오가 또 한 번 일을 냈다. 128분. 12세가.
권남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