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조명이 거리를 밝힌 지난 20일 밤 서울 종로구 청계천.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연인과 가족들이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거니는 한때 건물 뒤편에선 노숙인들이 침낭 하나를 부둥켜안고 이른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줘 고마워. 따뜻한 핫팩도 주고 얼마나 좋아.”
광화문역을 집으로 삼고 있는 노숙인 김일봉(61)씨가 그를 찾아온 구세군브릿지종합지원센터(원장 이문재 구세군 사관) 자원봉사자 이병규(68)씨에게 말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김씨는 군대 전역 후 서울에서 큰 꿈을 품고 안경원을 차렸지만 실패했다. 오갈 데가 없어지자 종이상자를 이어 지하철역 안에 자신만의 거처를 만들었다. 술을 좋아하기에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할 수 없다. 시설은 술 취한 이들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찬 바람이 역사 안에도 들어왔는지 김씨의 얼굴은 빨갛게 얼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침낭이 얇아 보였기에 이씨는 김씨에게 새 침낭을 건넸다. 하지만 김씨는 “이미 하나 갖고 있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다른 노숙인들이 이미 침낭이 있음에도 술과 바꿔먹기 위해 없다며 새 침낭을 받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김씨는 “한 번씩 씻고 싶을 땐 걸어서 10분 거리인 센터를 찾아간다”며 “먹여주고 돌봐주고 찾아와 건강까지 살펴주니 참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간호사 5명과 심리상담사 1명은 노숙인을 위한 응급구호 봉사활동을 펼쳤다. 센터가 있는 서대문구에서 광화문과 중구 을지로를 거쳐 멀리는 동대문역까지 가는 일정이다. 대한간호협회 중앙간호봉사단과 포널스 봉사단이 한 주씩 돌아가며 사역을 맡는다. 퇴근 후 2~3시간씩 걸으면 지칠 법도 하지만 이들은 봉사하는 게 보람 있다고 한다.
서울시청 뒤편을 비롯해 광화문 일대 고층빌딩 옆은 밤 9시를 넘기자 어두워졌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노숙인이 잠을 자고 있었다. 고가도로 길목 아래에도 노숙인 두 명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간호사 오경헌(50)씨가 이들을 일으켜 손목을 잡으며 맥박을 살폈다. 한 명은 콧물을 훌쩍였다. 오씨는 감기약을 건넸고 이씨는 “내일 꼭 센터에 와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이씨는 “저마다 사연 하나씩은 품은 분들”이라며 “이분들이 센터를 찾아와 진료를 받고 수급도 받게 됐을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커피믹스 한 봉지를 받아들고 그대로 먹었다. 커피를 끓일 따뜻한 물 한잔 구하기가 어렵거니와 그냥 먹어도 당분이 높아 끼니가 되기 때문이다. 굶주림에 위산이 분비되는 와중에도 산도가 높은 귤로 배를 채우는 이들도 여럿 보였다. 사업실패 가족불화 등으로 실의에 빠진 채 건강 돌보기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봉사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갔다. 동대문소방서 구급대원 김한샘(43)씨는 10년 넘게 봉사하고 있다. 그는 “봉사를 통해 직장과는 다른 시각에서 노숙인과 환자를 바라볼 수 있다”며 “직장에서 환자를 마주할 때도 사람 대 사람으로 진정성 있게 대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가장 낮은 곳에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섬긴다”며 “이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드리기 위해 늘 공감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노숙인에게 파스를 건네던 손정아(42·여) 아주대 간호대학 박사는 “3년 전 봉사를 시작하며 센터 직원들이 노숙인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가족처럼 지낸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의미이지만 당장은 춥기에 오늘 밤 조금이라도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실패로 실의에 빠졌어도 센터에 찾아올 정도라면 이내 재활에 성공해 삶의 전선으로 복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거부하는 이들이 거리에 많다. 찾아가는 응급구호 봉사활동은 그런 노숙인을 직접 만나기 위해 생겨났다. 이규만 센터 팀장은 “치료와 상담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직접 찾아간다는 게 이 사역의 의미”라며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간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곳에 손길을 뻗어 가난한 이를 재활토록 하는 게 센터와 자원봉사자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