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두산’의 손익분기점은 자그마치 730만명이다. 순제작비 260억원이 투입된 터라 그만한 관객을 모아야만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제작비가 이렇게 치솟은 건 VFX(시각특수효과)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인데, 1000만 관객을 동원한다고 해도 실수익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 제작비는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과거에는 100억원대만 해도 ‘한국형 블록버스터 대작’ 축에 들었으나 이제는 명함도 못 내민다. 200억~300억원대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군함도’(2017)와 ‘안시성’(2018)이 그러했고, ‘신과함께’ 1·2편은 각 170억원씩이 투입됐다.
올해 개봉 예정작 중에도 ‘200억 대작’들이 적지 않다. 이병헌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중앙정보부장으로 분한 ‘남산의 부장들’은 총제작비 200억원이 들었다. 1970년대 시대상을 구현한 대형 세트장과 미국 프랑스 등에서 진행한 해외 로케이션에 상당액이 쓰였다.
송중기와 김태리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는 ‘승리호’는 총제작비 260억원에 달하는 SF 블록버스터다. 한국영화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인 만큼, 광활한 우주 전경이나 우주선 내부를 구현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등이 출연하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도 총제작비 230억원 정도가 들어갔다.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 연상호 감독의 ‘반도’,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등도 각각 200억원 안팎의 총제작비가 투입됐다.
한국영화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영화 한 편당 제작비도 덩달아 늘어난 것이다.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인건비와 스타 캐스팅에 따른 배우 출연료가 상승한 건 물론, VFX의 비중이 늘면서 CG(컴퓨터그래픽) 비용도 추가됐다.
한 중견 제작사 대표는 “인건비와 재료비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앞으로 제작비가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해외 시장이나 부가 판권 플랫폼을 개척하는 방법밖에 없다. 제작사 입장에선 돈을 필요한 곳에 정확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작비가 높아지면 스태프 처우가 개선되고 작품 완성도가 높아지는 등의 장점이 있는 반면, 대작 간 출혈경쟁에 따른 위험부담이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추석 시즌에 ‘안시성’ ‘명당’ ‘물괴’ ‘협상’ 등 고예산 영화들이 동시에 개봉했다 네 작품 모두 흥행에 고배를 마셨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한국영화가 가지 않았던 길을 택한 고예산 영화의 모험적 시도는 충분히 가치 있으나, 스타 캐스팅에 의존한 제작비 상승은 후진적 양상”이라고 꼬집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산업논리에 따른 양극화 추세를 거스를 순 없으나 중·저예산 영화들과의 적절한 안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