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배당은 2000석 규모였다. 당시 장년 성도가 500명인데, 주일 낮 1부와 2부 예배를 드리니까 그 넓은 성전이 텅텅 비어있었다. ‘그래, 이제 성전을 건축했으니 길은 하나다. 오직 전도로 성전을 채우는 것이다.’
성도들은 텅 빈 성전을 보면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온 성도가 함께 기도하면서 전도에 박차를 가했다. 믿음이 좋고 신실한 집사 중 일부는 신학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그분들이 전도사가 되는 조건으로 100가구 전도의 목표를 제시했다.
그분들과 함께 성도들이 아주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다. 감사한 것은 교회 옆에 붙어있는 롯데마트의 간접 홍보 효과였다. 2000년 초반만 해도 대전에 대형마트가 거의 없었다. 대전 서남부 지역에 롯데마트가 처음 세워진 상황이었다.
당연히 지역 사람들이 호기심에 대형마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롯데마트 주차장과 교회 주차장이 붙어 있다 보니 마트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한밭제일교회를 보게 됐다. 그러다가 교회를 방문하게 됐다. 점점 다른 지역이나 아주 멀리서 이사 온 성도들이 교회에 등록하면서 성도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입당 후 2001~2003년 4000여명이 등록했다. 3000평 이상 대지, 3000명 이상 성도라는 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었다. 내가 선포한 것이 그대로 현실이 돼 안겼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선포한 말을 들으시고 기도를 들으셨다. 우리의 믿음을 보셨고 그 믿음대로 역사하셨다.
여기서 교회 부흥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성도 수가 많아지면 부흥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부흥은 외적인 수로 평가할 수 없다.
성도 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순히 크고 아름다운 성전과 접근성 좋은 지역적 특성으로 성도 수가 많아진 것을 부흥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한밭제일교회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교회가 지방에서는 성도 수가 꽤 모이는 교회였지만, 그 많은 성도가 다 우리가 전도해서 회심해 교회성장을 이룬 게 아니었다. 그래서 성도 수를 갖고 자랑해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밭제일교회 성도 수가 조금 많은 것을 갖고 누구에게 교회 부흥됐다고 떠들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분의 도움이요 긍휼히 여기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도가 3000명가량 모였을 때 일이다. 평소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개척 후 23년 동안 거의 교회 바깥출입 없이 강단에서 기도와 금식을 하며 지냈기에 전국교회 상황이 궁금했다. 그래서 비서를 맡았던 부목사와 함께 전국 순회를 시작했다.
1개월 동안 전국 교회를 돌아봤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해 지방이나 수도권을 막론하고 웬만한 중대형 교회는 정보가 드러나 있다. 하지만 2003년만 해도 대형교회가 아니면 교회에 대한 정보를 알 길이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지방 대도시의 교회를 탐방하려고 들어가는데 왠지 분위기가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냉랭한 느낌도 들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비슷한 느낌이 드는 여러 교회에 들어가 담임목사님을 만나 뵙거나 직원이나 사무장을 만나보면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담임목사님의 나이였다. 70세 가까이 연세 드신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는 처음 갔는데도 뭔가 분위기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53세였던 나는 이런 결단을 했다. ‘그래, 목회는 내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게 아니지.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간 방문객도 무언가 냉랭함을 느낀다면 교회 다니는 성도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 사고가 고착되고 변화와 발전이 없다면 성도들이 영적으로 살아날 리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주님께서 마음 아파하실 것이다.’
나는 호적에 출생 연도가 1년 늦게 돼 있었다. 그래서 만 65세까지 목회한다면 한국 나이로 67세까지 목회하는 셈이었다. 그만하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한 뒤 주일 강단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저는 만 65세에 은퇴합니다.” 그리고 당회를 열어 교회 정관을 개정했다.
목사만 65세에 은퇴한다고 하면 나중에 정년이 돼 은퇴할 때가 됐을 때,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장로도 65세에 은퇴하자고 설득했다. 성도들이 그 말에 동의해 정관을 바꿨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70세 목사님들이 목회하시는 교회가 모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연세가 있음에도 더 강력하고 활발하게 목회하시는 분들도 많다.
65세에 은퇴를 선포하면서 이런 고민도 들었다. ‘65세에 은퇴한다면, 나이로 보아 아직 할 일이 많은데… 그 후엔 뭘 하지.’ 유명한 부흥강사로 터를 닦으신 분이나 유명 목회자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은퇴 후 할 일이 없었다.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은퇴 후 사역을 주십시오. 은퇴 후에 더 알차고 보람 있는 사역을 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선포했다. “나는 은퇴 후에 더 바쁘고 더 많이 베풀고 나누며 섬길 것이다!”
▒ 장자권은 이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표적은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
예수님은 모두에게 공평한 은혜를 안겨주셨다. 그 거룩하신 이름, 전능하신 이름, 정복자의 이름, 통치자의 이름, 치유자의 이름, 그 위대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 복음 전파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특별은혜를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아주 놀라운 말씀을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주고 가셨다. 그 말씀이 무엇인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알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가셨는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특권을 선포하고 가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가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존재하지 않으시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말씀에 의하면 분명히 두 가지 놀라운 은혜가 있기에 가능하다. 하나는 기도요, 또 하나는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이다.
먼저 기도에 대한 말씀으로 들어가 보자.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다.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기도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한다.”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 그분은 승천하신 후에 하늘에서 어린양으로 존재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직접 약속하셨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맞다. 성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것이다, 그분들은 일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본체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하신 것과 똑같은 역사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으로 기도하면 구한대로 받는다고 확실하게 약속하셨으니 그대로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정말 감사한 것은 기도와 함께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도 약속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그 보혜사는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세상은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이신 그분을 받지 못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세상의 그 어떤 지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진리의 영이신 그 보혜사를 알 수 있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보혜사이신 진리의 영을 안다고, 또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고, 우리 속에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그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처럼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도 우리 안에 계시고 함께 거하신다. 그분이 함께 계시기에 고아와 같이 버려지지 않는다. 이 말씀이 진리다. 우리는 말씀대로 믿어야 한다. 보혜사는 누구신가. 진리의 영이신 그분은 누구신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보혜사는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니까 예수님이 계실 때처럼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목사라는 이름으로, 장로라는 이름으로, 권사라는 이름으로, 안수집사나 집사라는 이름으로는 할 수 없다. 오직 내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울 때 나타나는 모든 표적은 바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또 보혜사 성령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