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역사가 담긴, 인류사 주요 인물과 장면에 큰 영향을 미친 책 ‘성경’. 이 책은 어떻게 우리에게 왔을까. 이 질문의 답을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 최근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선한목자교회 부교역자인 저자가 쓴 ‘바이블 히스토리’(브니엘)다. 전작 ‘갓 히스토리’가 성경 인물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은 성경과 이에 얽힌 역사에 주목한다. 창세부터 초대교회를 다룬 성경 속 역사와 로마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이르는 기독교 주요 역사를 씨줄과 날줄을 엮듯 매끈하게 담아냈다.
동서양 역사를 종횡무진 누비며 거대 담론을 다루지만, 성경 내용이나 세계사를 잘 모르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썼다.
인문학적 관심으로 성경을 읽고자 하는 비기독교인도 겨냥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자산”이라는 게 저자의 철학이다. 다만 배경지식이 없으면 쉽게 읽히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성경과 교회사의 전체 윤곽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려 했다.
책은 13장으로 구성됐는데 1~10장이 성경 내용을, 11~13장이 기독교 역사를 다룬다. 성경은 순서대로가 아닌 특징과 주제별로 묶어 소개한다. 구약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신약은 ‘사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예언서’로 나누는 식이다. 성경 내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내용 파악을 돕는 읽기 방법부터 전달한다. 서사 구조가 있는 모세오경과 사복음서, 역사서는 육하원칙에 따라 읽고 서신서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고려하며 논지를 파악한다. 예언서는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우리 편에 전달하려는 의도로 쓰인 만큼 비유가 적지 않다. 명확한 해석을 위해선 당대 사회와 문화를 이해해 해독하는 데 힘써야 한다.
각 장 서두엔 해당 성경의 맥락을 꿰뚫을 수 있는 키워드와 핵심 주제를 제시한다. 창세기는 ‘생육과 번성’,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는 ‘언약’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을 키워드로 삼아 풀어나간다. 마가복음은 고난에, 사도행전은 1장 8절의 말씀 따라 내용의 맥을 잡았다. 삽화는 없으나 본문 내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표가 여러 곳에 들어있다(표). 말미엔 현대인이 성경 속 장구한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며 읽을지를 제시했다. 독자가 직접 성경을 읽으면서 깊은 이야기를 체험하라는 것이다. 책이 쉽게 읽히면서도, 성경 길잡이란 본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유다.
묵시가 담긴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많은 지면을 할애해 시대상황과 문화 등으로 비유와 상징을 푸는 법을 소개한다. 장별로 내용을 요약하면서 그동안 오독돼 온 상징의 의미를 밝힌다. 대표적인 게 ‘666’이다. 이는 네로 황제로 대표되는 당대 기독교 박해자를 뜻한다. 넓게 보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우상화하는 존재가 666이 된다. 이를 아돌프 히틀러나 구소련, 생체용 마이크로칩으로 풀이하면 엉뚱한 해석에 빠지게 된다.
사도행전 이후 이야기는 기독교 역사로 풀어낸다. 30만명의 신을 용인했던 다신교 국가인 로마제국이 왜 기독교만 박해하다 국교로 공인했는지, 기독교 세계로 문을 연 중세가 어쩌다 암흑기로 혹평받으며 근세로 넘어갔는지 등을 압축해 설명한다. 이어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종교개혁과 미국·프랑스 혁명 및 영국의 산업혁명, 인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이어지는 선교 역사가 단숨에 망라된다.
중세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단 3장에 걸쳐 보여주는 만큼 깊이 있는 해설을 기대하긴 어렵다. 빠른 전개로 숨 가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를 인식한 듯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성경과 관련된 최고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작은 등불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 책이 끓는 가마솥같이 변화가 심한 세상과 역사를 열심히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작은 지팡이가 되길 바란다.”
지금도 도도히 이어지는 성경의 역사를 구경만 하지 말고, 그 길에 직접 뛰어들어 주역이 되라는 저자의 제안은 새길만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