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란 단지 생계유지 수단만이 아니다. 자아를 실현하고 인생과 세계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기독교인에게 일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강조한 하나님의 소명을 구현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 직업세계는 세분화, 다원화됐고 소외 문제까지 일으키면서 일에 대한 신학 정립이 더 절실하게 됐다.
이 책은 미국 예일대 신학부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가 야심차게 정립한 ‘일 신학’이다. ‘일과 영성’ ‘일터 신학’이라 부르는 영역에 새로운 신학의 틀을 제시한다. 이름하여 ‘종말론적 새 창조로서의 성령론에 기초한 일 신학’이다. 저자는 이 신학을 형성하기 위해 독일 튀빙겐대 위르겐 몰트만 명예교수의 ‘희망의 신학’을 기본 토대로 삼았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이 본질적으로 종말론에 근거한다고 본다. 여기서 종말론이란 세상이 완전히 끝나 소멸하고 다시 시작되는 단절적 관점이 아니라, 현 세상과 장차 올 시대가 연속된다는 변혁적 관점이다. 인간의 일도 종말의 순간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어지며 통합된다고 본다. 인간의 일이 하나님의 새 창조에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동시에 일은 성령과도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이며 세속적인 것을 포함한다. 흔히 성령을 오순절교회가 강조하는 성령의 은사와 동일시하지만, 본질에서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들의 다양한 소명 안에서 일하도록 부르시고 자격을 부여하시며 능력을 주는 데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일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인간에게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재능을 주신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이 점이 발견되는데 성막과 성전을 디자인하고 건설하고 장식한 장인에게 성령이 영감을 줬다고 기록하고 있으며(출 35:30~34) 이스라엘의 사사들과 왕들은 성령의 기름 부음 아래 그들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책의 주된 논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일상적인 일을 ‘성령 안에서의 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 신학을 정립하면 더 이상 일에 얽매이거나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을 포기할 수 있다. 자기 일을 통해 하나님과 협력하면서 하나님의 새 창조에 참여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볼프 교수는 한국교회 독자들에겐 친숙하다. 역작 ‘배제와 포용’을 비롯해 ‘광장에 선 기독교’ ‘기억의 종말’ ‘알라’ ‘베풂과 용서’ 등을 펴냈다. 이 책은 1985년 저자가 몰트만 박사의 지도로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노동의 미래-미래의 노동’을 확대 발전시킨 것이다. 영문판 책은 91년 발간됐지만 일의 신학을 거론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한 책으로 자리매김해왔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은 논문에 기초한 탓인지 다소 학문적이다. 노동 현장이나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구체적 사례도 찾을 수 없다. 본론을 전개하기에 앞서 서술된 일에 대한 담론,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의 일 이해에 대한 비평 등은 눈길을 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