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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올해가 궁금한가요?



해가 바뀌는 시기에는 많은 사람이 신년 운세를 본다. 주역과 토정비결이 동원되고 띠별 운세나 별자리 운명, 타로점을 보기도 한다. 나의 메신저 창에도 빨리 여기로 가서 사주를 보라는 링크가 수시로 등장했다. 그 모든 행동의 이유는 궁금증 때문이다. 새해 나의 재물운이 어떨지, 인간관계는 괜찮을지, 뜻하는 바를 과연 이룰 수 있을지 등등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참 많다.

미래라는 단어는 입술을 문처럼 열고 시작해 혀를 둥글게 굴리며 발음된다. 음악처럼 사뿐하면서도 신비한 공기를 머금은 단어다. 어린 시절 이 아름다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 적이 있는데 ‘아닐 미’에 ‘올 래’라는 비교적 쉬운 한자의 조합이라 놀랐던 적이 있다. ‘미래’의 의미는 새롭고, 경이롭고, 거대한 무엇이 아닐까 했는데 그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심플한 뜻이 전부였다. 사실 그것이 미래의 본질일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 그것은 꽝으로 판명 난 복권처럼 시시할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 광산처럼 찬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것은 3중 암막커튼 뒤에 있다. 우리는 그 낌새를 채기 위해 그저 애쓸 뿐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발을 동동 구르며.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운세를 점치며 단지 미래만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거도, 현재도 궁금해한다. ‘당신의 초년운은 이러이러했다’는 구절 앞에 어린 시절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당신의 사주에는 이 직업이 맞다’는 조언 앞에 내가 십 년째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기도 한다. ‘별자리에 따르면 당신의 성격은 이러이러하다’는 구절을 안 읽고 넘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지점들이 재미있었다. 미래야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궁금한 게 당연하다 치지만 우리는 왜 과거까지 확인하는 것일까? 지금 나의 기질까지 궁금한 것일까? 잘 살고 있는 배우자와의 궁합도 공연히 궁금한 것일까? 과거라 함은 내가 통과한 사건들인지라 이미 나는 샅샅이 알고 있다. 나의 성격 역시 나보다 더 잘 알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배우자와의 합도 제8자쯤 되는 사람이 알 리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 운명론적으로 분석한 나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 한다.

몇 해 전 그 이유를 스스로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늘 신문 귀퉁이의 운세나 인터넷 무료 운세 정도만 보던 내가 어쩌다 돈을 내고 사주를 보게 됐다. 당시 커리어도, 애정사도 극도로 불안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인 모두 업무에 있어서 지긋이 뿌리 내리거나, 결혼 등으로 인생의 닻을 내리는데 나만이 늘 휘청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의 사주풀이에 따르면 그것이 내 운명이라고 했다. 근사하게 묘사한다면, 나는 평범한 삶에 귀속되기보다 비틀거리며 새로운 일을 해나가는 팔자라서 그렇게 살아온 것이고, 살아갈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히려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아, 이것이 나의 운명이었구나. 내가 부족해서, 뭔가를 잘못해서 지금처럼 흘러온 게 아니고 그냥 이렇게 살도록 설계된 것이라니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팔자라는데 별 수 있나 싶어졌다. 내가 탈선하며 나동그라지고 있는 게 아니고, 운명대로 순탄히 넘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미래를 점치고, 과거까지 되짚는 것 같다. 평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라는 존재를 다른 프레임에서 바라보고 우주적인 기운을 덧입혀 해석하는 것. 그로 인해 스스로를 건사해나가는 번뇌를 슬며시 내려놓는 것. 운명에 살짝 기대보는 것.

이렇게 말하니 내가 온갖 점괘를 맹신하는 운명론자 같지만 딱히 그렇진 않다. 참고로 나는 1월생으로 평생을 개띠로 살아왔다. 개띠의 운세를 보고, 개띠의 성격분석 따위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하지만 근래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띠’라는 것은 입춘 기준으로 바뀌기 때문에 사실 나는 닭띠였던 것이다!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왜 평생 몰랐던 거지? 이렇게 손쉽게 띠가 바뀌어도 되는 건가? 심지어 2020년은 닭띠에게 삼재라고 한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따지면 작년에도 삼재였지만 모르고 넘어갔고 별다른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운명은 무겁지만 때로 이렇게 나풀거리며 뒤집히기도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세가 가장 어울리는 순간이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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