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정치의 관계를 말할 때 교과서처럼 인용되는 말씀이 있다. 요한복음 18장 33~38절이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
예수님이 보셨던 나라와 왕의 개념과 달리 빌라도가 봤던 관점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연결하려고 억지 주장했고 그쪽으로 몰아갔다. 결국 당시 로마제국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재임기간 26~36)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반역죄를 씌워 사형을 언도했다. 고대 문헌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한 자’ ‘뇌물을 좋아하고 신을 모독하며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은 재판을 하고 근거에도 없는 중형을 내리기로 유명한 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사도신경을 통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고백하며 빌라도의 허물과 죄를 명확하게 적시해 오는 세대에게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의 진의를 아는 것이 교회와 정치를 바르게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
첫째, 나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절)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라는 빌라도가 말하는 나라와 전혀 다르다. 빌라도는 유대인 군중들과 함께 로마를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닌 하늘나라를 말씀하셨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나라는 사람이 인식하는 종류의 나라일 뿐이고 예수님의 나라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영적 나라를 의미한다. 교회와 정치, 교회와 나라, 교회와 국가의 이해를 위해 깊이 다뤄야 할 점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나라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해석이 아니다. 예수님은 결국 정치에 의해 처형을 당하셨다.(요 19:16~42)
둘째, 왕은 누구를 말하는가.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37절)
빌라도의 질문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하는 군주로서 정치적 왕으로 엮어 넣었다. 민란을 일으켜 로마의 제왕이 되려는 음모를 인정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왕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빌라도와 유대인들이 말하는 세상에서 왕권을 잡고 권세를 부리며 통치하는 유대인의 왕(19:19~22)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죄와 우상과 사탄과 저주와 멸망을 깨뜨리시는(행 2:24) 왕의 왕 되심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님은 정치를 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왕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시어 새 생명을 주시는 주권자, 그리스도로 오신 왕이시다. 그러나 요한복음 19장 3절에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라는 말씀처럼 왕이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버림받았다.
셋째, 진리를 왜 알아야만 하는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유대인과 빌라도는 민중으로서 예수를 행악자(요 18:30)로 불렀고, 증오와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요 19:6~7) 카이사르 즉 로마 황제만이 그들의 왕이라고 주장하며(요 19:15) 결국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다.
이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방법으로 다뤘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를 통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선포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어린 양이 되어 고난받고 죽임당하시기 위해 모든 권한을 포기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다 이루신 분(요 19:30)이었고 그는 진리이셨다.(요 14:6)
예수님은 정치보다 진리를 알기 원하신다. 미국 최고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교회의 정치학’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모든 사회에 앞서 붙잡아야 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하나님인데,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고 충고했다. 한국교회는 예수님과 빌라도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 무엇이 교회의 우선순위이며, 추구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갈등 대결 불신으로 치닫는 교회와 정치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데 서로 힘써야 한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