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과 이산가족, 위안부 문제는
전쟁의 비극이란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동일
피해자 생전에 과거 매듭짓는 게 국가 권력의 최소한 의무
그러면 새 역사 물꼬 트일 수도
1월 27일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는 국제기념일이다. 소련군이 1945년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한 날이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12개국이 지켜오던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일을 유엔이 2005년 총회 결의를 통해 국제적 기념일로 승격했다.
75번째인 올해엔 아우슈비츠 ‘죽음의 문’ 앞에 세계 50여개국 대표들이 홀로코스트 생존자 200여명과 자리를 함께했다. 주최 측인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홀로코스트의 진실은 죽지 않아야 한다”며 “역사를 왜곡하고 학살 범죄를 부정하고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은 희생자의 기억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도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는 아우슈비츠로 향하기 전 대통령 관저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3명과 만났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6일 폴란드 총리와 함께 아우슈비츠를 찾았고, 이날은 베를린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생존자 사진전에 참석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독일의 전쟁 반성은 2차대전 추축국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에 헌화하던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무릎을 꿇었다. 1996년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은 유엔보다 9년 앞서 1월 27일을 ‘국가사회주의(나치) 희생자 추념의 날’로 지정했다. 독일은 피해자나 상대국의 빗발치는 요구에 마지못해 응하는 식이 아니라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반성한다. 나치의 반인륜 범죄는 이탈리아나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만 110만명이 숨졌고, 전쟁 중에 희생당한 유대인은 총 600여만명이다. 그런데도 반성이 일관되고 지속적이다 보니 상대가 받아들이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전쟁 범죄란 측면에서는 홀로코스트와 본질이 같다. 그러나 일본의 태도는 깔아뭉개기 식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정상 국가로 복귀하겠다는 구호를 국제사회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브란트의 사죄는 승전국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외신들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동서독 화해 정책인 동방정책은 국제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전범국에 벌칙으로 가해졌던 분단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난 23일 경남 창원에 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또 세상을 떠났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19명만 남았다. 이들마저 사라지게 되면 일본은 살아 있는 역사 피해자에게 직접 반성하는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된다.
이산(離散)의 문제 역시 전쟁에 뒤따른 비극이라는 점에서 홀로코스트나 위안부와 같은 맥락에 있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역사 범죄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6·25전쟁을 일으킨 명분이 무엇이었든 숱한 인명을 해치고 피붙이의 왕래를 영구 단절시킨 것은 반인륜 범죄다. 더구나 이산가족 문제는 동족 간에 발생한 비극이다. 남과 북이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도 전쟁 발발 70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상설 면회공간조차 없다는 것은 가중처벌 사안이다. 정치 상황이 어떻든 끊어진 천륜을 이어주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에서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키로 했다. 그해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도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인도적 협력을 강화하고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이른 시일 내 열기로 했다. 하지만 당국 간 협의는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엔 근근이 이어지던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교류마저 급감했다.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설을 맞아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분들이 더 늦기 전에 가족과 함께하실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북한 개별관광을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는 보도도 있다. 북한이 적극 응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의 피맺힌 한을 정치의 틀 안에 집어넣어 바라보거나 반대급부와 연계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혈육의 정 하나 보듬지 못하면서 핵무장이니 비핵화니 주장하는 게 도대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거부하는 쪽도 문제지만 정치 프레임에 휘말려 제대로 주장조차 못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가운데 3400여명이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이산의 한을 끝내 풀지 못하고 눈을 감은 이가 8만640명으로 전체 13만3370명의 61%다. 생존자 가운데 80대가 40.5%, 90대가 22.7%, 70대가 22.2%다. 머잖아 이산 1세대는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이들이 살아 있을 때 서둘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동서독처럼 새로운 역사의 물꼬가 트일지 모른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