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국사회를 움직인 수많은 인재들이 기독교인이다. 크리스천 인물을 탐사하며 느끼는 소회는 한국교회가 무심해도 너무 무심하다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와 교회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 70여명을 취재한 저자가 남긴 장탄식이다. 국민일보 논설위원이자 종교국 부국장인 저자는 2017년부터 3년간 전국 곳곳 교회와 관련 유적지를 찾아 기독교 신앙을 품고 역사를 바꾼 인물의 흔적을 추적했다. 특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혹은 널리 알려졌지만, 기독교적 시각으로 조명받지 못한 인물을 집중 취재했다. 책에는 ‘한국 기독 역사 여행’이란 이름으로 국민일보에 소개된 인물 중 31명을 추렸다.
그래서인지 책에는 익숙한 인물의 낯선 행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한국 유기농 농업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원경선(1914~2013) 풀무원농장 설립자와 중도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1886~1947)이 그렇다.
원경선은 10대 시절 황해도 수안에서 교회에 처음 발을 들인 뒤 꾸준히 성경을 읽으며 신앙생활을 했다. 이때 접한 신앙은 그가 학교에 다니고 사업을 일구는 가운데 나침반 역할을 했다. 고된 세상살이로 도덕관념과 양심이 흔들릴 때마다 신앙으로 어지러운 발걸음을 바로잡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강도 사건에 휘말리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훗날 원경선은 제자에게 자신을 전도자라고 소개한다. “내 평생의 직업은 오로지 전도하는 농부올시다.”
좌파 지식인으로 분류돼 해방 60년만인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서훈된 여운형도 기독교 가치로 평생을 살았다. 서울 승동예배당 전도사로 있으면서 평양신학교를 수료했다. 1914년에는 중국 난징 금릉대학 신학부로 유학하기 위해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를 찾아갔다. 그때 언더우드에게서 “당신이 신학을 계속할 것 같진 않다. 반드시 정치 운동으로 나아갈 것”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이 말대로 그는 독립운동과 건국에 헌신한 정치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복음을 품고 살았던 그의 뜻은 현재 경기도 양평의 몽양여운형생가와 기념관에 작게나마 남았다. 복음과 애국을 목표로 후학을 양성했던 광동학교 터 표지석이 그것이다. 그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후 저자는 다시 탄식한다. “몽양은 기독교 가치로 산 사람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으나 기독교 애국지사를 근대 기독교 역사 관점에서 바라본 학술연구 자료의 빈곤을 새삼 느낀다.”
이 외에도 조선 왕손 이재형을 전도한 마부 엄귀현(1876~1951)과 최초의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만든 송암 박두성(1888~1963), 고아와 걸인을 돌보다 24세에 별세한 방애인(1909~1933), ‘여자 안중근’으로 불린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 등을 기독교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저자는 지난해 ‘믿음의 원정대’란 이름으로 국내 성지순례단을 모집해 5회에 걸쳐 현장을 답사했다. 저자가 취재 중 들은 한 비기독교인 역사학자의 말에 자극받은 것도 계기가 됐다. “한국근대사는 교회가 나서서 할 일이 참 많은데….” 한국교회도 이 말을 자극제로 삼아 근현대사 뿌리 찾기에 열심을 내길 기대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