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말씀대로, 믿음대로 선포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역사하시는 것을 많이 경험하며 살아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전한밭제일교회의 후임자 선정이다. 지금은 제2대 담임으로 김종진(47) 목사가 목회한다.
“그릇이 큰 후임자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리더십이 뛰어난 후임자를 보내주소서. 마음의 기본 토양이 잘 준비돼 있고 나이에 비해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한 후임자를 허락하소서.”
평소 후임자 선정을 두고 기도로 준비하면서 첫 번째로 눈여겨본 것은 영적 계보였다. 나와 사모는 신앙의 1대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특히 부모가 믿음으로 열심히 심은 가계에 있는 주의 종들을 보면서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 ‘아, 부모세대가 정말 믿음으로 심으면 자녀세대가 복을 받는구나.’
그래서 자녀의 배우자도 믿음의 가계를 최우선으로 봤다. 그리고 그 선택은 분명하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다. 사위는 선교사 집안, 며느리는 늦게 목회를 시작한 개척교회 목사님 집안이다.
김 목사를 만난 것은 2012년 5월이다. 특별한 목적을 갖고 미국에 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본래 의도와 달리 일이 꼬였다. 현지 관계자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정이 중간에서 붕 뜬 상태였다. ‘아,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정말 황당무계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님께서 무슨 뜻으로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사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바로 한국에 들어와야 했지만 비행기 티켓도 그렇고 해서 할 수 없이 호텔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LA 미주복음방송에서 근무하던 김 목사가 인터뷰를 하자고 찾아왔다. 그가 첫날 인터뷰 때 이렇게 말했다.
“아, 목사님께는 뭔가 남다르신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찾아 왔다. 복음방송에 가서 인터뷰를 추가로 하자고 해 녹음을 마쳤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13년 김 목사를 한밭제일교회로 불러들였고 청년부 사역을 맡겼다. 2014년 11월 공동의회를 통해 2대 목사로 결정했다.
김 목사와 사모는 모두 영적 계보가 귀한 가정에서 자랐다. 김 목사의 부친은 나환자촌에서 평생 목회하다 은퇴한 분이시다. 어머님은 기도를 많이 하시고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었다. 김 목사의 할머니 또한 기도 대장이었다. 김 목사의 사모도 가문에 순교자가 있을 만큼 영적 계보가 있었다.
김 목사를 담임 목회자로 결정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염려를 했다.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목회한 경험이 없고 20여년 동안 주일학교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와 청년부에서만 사역했기 때문이다. “목사님, 그래도 규모가 있는 교회의 목회를 한 분을 모셔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이렇게 선포했다. “저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믿음대로 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지금은 야생마처럼 훈련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그분은 한밭제일교회를 담임할 충분한 자질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고삐를 잡으시고 훈련만 시키시면 그는 분명히 명마, 천리마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와 선포를 들으십니다.”
나는 항상 우리 담임목사를 향해 “나는 조랑말이고 김 목사님은 준마”라고 선포한다. 내 선포대로 목회를 잘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40대 초반에 단독 목회의 경험이 없어 이런저런 일로 나름 시행착오도 있었다. 표현하기 힘든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임 목회자를 통해 하나님이 위대한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사위나 아들을 후임자로 세울 수도 있었다. 당시 독립교단에 소속돼 있었기에 정년을 연장해 목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일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목회는 사이즈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누림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40여년을 목회하면서 제일 행복했던 때는 교육전도사 시절이다. 1978년 당시 친구 전도사가 사례비로 7만원을 받을 때였다. 나는 작은교회 전도사이다 보니 사례비로 2만원을 받았다. 교통비도 없어 대전 시내를 걸어 다니며 신학을 공부했다. 그렇게 어렵게 살았지만 내겐 예수님밖에 없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했다. 그러기에 사위나 아들도 교회 크기와 상관없이 행복하게 목회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목회를 물려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2017년 10월 은퇴 후 국내의 작은 미자립교회와 개척교회의 목회자들을 섬기고 있다. 선교사와 각 대륙 현지의 어려운 목회자들도 말씀과 금식 기도 운동으로 섬기고 있다. 세계를 다니면서 장자권 사역을 펼치는데 우리 교회가 불편하다면 어떻게 마음 놓고 이 사역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좋은 후임자를 보내주셔서 염려하지 않고 선교할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셨다.
김 목사는 지금도 크든 작든 먼저 내게 의논하고 사역을 결정한다. 물론 나도 담임목사의 의견에 100% 순종하고 격려하며 동역한다. 김 목사는 나와 단둘이 대화하고 나면 반드시 무릎 꿇고 안수기도를 받는다. 요즘 젊은 목회자 가운데 원로목사에게 무릎 꿇고 안수기도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처럼 특별한 은총은 후임 목사와 만남의 은혜다. 후임자를 놓고 믿음대로 선포하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누리고 있다.
▒ 장자권은 이것이다
예수님 보혈의 권능으로 죄와 싸워 이기는 권세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특별히 사람을 지으실 때 분명히 특권을 부여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이 말씀 가운데 ‘다스리게’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자. 하나님이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대상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땅에 기면서 움직이는 생물 가운데 무엇이 있는가. 바로 옛 뱀이 있다. 옛 뱀인 사탄 마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지금 이 사탄 마귀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죄다.
옛 뱀인 사탄 마귀가 가져다준 죄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고난을 겪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스려야 될 대상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죄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6~7)
하나님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아우 아벨의 열납된 제사로 인해 그를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 가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씀에 의지해 죄의 소욕이 육신의 정욕을 타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려고 할 때 우리가 생명을 걸고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죄는 내 안에서 역사하고 있지만 내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죄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생명을 걸고 죄를 다스리는 일에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한다. ‘죄를 다스리라.’ 죄를 다스린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마귀를, 악한 영을 다스리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다.’ 마귀의 실체를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처음부터 범죄한 존재가 누구인가. 옛 뱀인 사탄, 마귀다. 그 첫 범죄자인 마귀는 죄를 통해 온 인류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흑암의 권세로 육신의 정욕을 통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 죄를 짓는 마귀를 물리치는 그 길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 없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다. 마귀의 일은 무엇인가.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짓게 하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고 그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인 장자들이다. 마귀에 의해 죄 앞에 무릎 꿇을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이 죄를 이길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 12:4) 무슨 의미인가. 생명을 걸고 죄와 싸워야 한다는 말씀이다. 왜 생명을 걸고 죄와 싸워야 하는가.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사랑하는 자녀라면 반드시 징계가 있다. 우리는 사생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됐다. 이 특권, 이 권세, 이 은총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장자권은 무엇인가. 천국 상속권이다. 장자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의 능력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님 보혈의 권능으로 죄와 싸워 이기는 권세다. 죄와 싸워 이기는 힘, 이것이 장자권의 특권이다. 장자의 권세를 누리되 죄와 싸워 이기는 권세를 누려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