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이 공식적으로(officially) 이뤄졌어요.”
소피아 케닌(22·미국)은 1일 올해 첫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상기된 얼굴로 이같이 밝혔다.
‘테니스 신동’에 불과했던 그가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신데렐라’가 된 뒤 ‘공식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까지 꿈을 이뤘다며 기뻐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혹독한 미국 이민 생활을 견딘채 딸에게 쏟은 아버지 알렉산더 케닌의 헌신이 결국 자신에 이르러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2일 AP통신 등 복수 미 언론에 따르면 케닌의 아버지이자 코치인 알렉산더는 1987년 구소련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안겨주고 싶어서다. 그는 낮엔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 꿨다.
케닌의 가족은 케닌이 1998년 태어날 당시 아이를 봐줄 친척들이 있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잠시 돌아갔지만 이후 다시 미국 플로리다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케닌은 인형이 아닌 공을 가지고 놀며 테니스에 가까워졌다. 3살 때 성인 라켓으로 첫 스윙을 하고, 10살 때 아버지와 연습 게임을 하는 등 ‘신동’의 모습을 보였다.
소질이 보이자 알렉산더는 미국테니스협회(USTA) 대회가 열리는 지역의 연습코트를 찾기 위해 딸을 데리고 미국 전역을 차로 운전해 다녔다.
아버지의 헌신은 서서히 꽃을 피웠다. 2017년 프로 데뷔 후 2018년까지 우승이 없던 케닌은 지난해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단식에서 3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점차 성인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메이저대회 프랑스오픈 3회전에서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39·미국)를 격파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 호주오픈은 그의 무대였다. 4강에서 세계랭킹 1위 애슐리 바티(24·호주)를 잡아내고 결승에선 메이저 대회 두 차례 우승자 가르비네 무구루사(27·스페인)에 2대 1 역전승을 거두며 결국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만 21세 80일에 우승한 케닌은 2008년 샤라포바(당시 만 20세 9개월) 이후 호주오픈 최연소 여자 단식 우승자가 됐다.
케닌의 우승으로 여자 테니스 세대교체의 흐름도 더 빨라지는 모양새다.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의 모습이다. 여자 테니스를 지배해 왔던 윌리엄스는 2017년 9월 출산을 전후해 예전과 같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젊은 선수들의 약진이 돋보인다.
2017년 프랑스오픈 옐레나 오스타펜코(라트비아)가 당시 20세 나이에 깜짝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US오픈 슬론 스티븐스(당시 24세·미국), 2018년 US오픈 오사카 나오미(당시 21세·일본), 지난해 프랑스오픈 애슐리 바티(당시 23세)와 US오픈 비앙카 안드레스쿠(당시 19세·캐나다) 등 20대 초반 선수들의 기세가 매섭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