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외에도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는 영화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작품이 한두 편이 아니었다. 시상식에서는 4관왕에 오른 기생충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둔 영화도 있었지만,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표를 받은 작품도 적지 않았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가장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예상된 작품은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두 영국 병사의 사투를 그린 이 영화는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17’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석권할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도 많았다. 하지만 ‘1917’은 이른바 ‘기술 부문’인 음향효과상 촬영상 시각효과상 트로피를 받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도 11개 부문에 오른 기대작이었으나, 남우주연상과 음악상만 차지했다. 조커에서 주인공 조커 역을 열연한 호아킨 피닉스는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무대에 올라 “나는 방황을 많이 했다.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을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게 바로 인류애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우주연상은 영화 ‘주디’에서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 주디 갈란드(1922~1969) 역을 연기한 러네이 젤위거에게 돌아갔다. 젤위거는 2002년과 2003년 각각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카고’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을 받진 못했었다. 그는 “우리의 영웅이었던 갈란드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는 미술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데뷔 34년 만에 처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브래드 피트는 영화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는 “(상을 받은 것은) 독창적이고, 절대적으로 영화산업에 필요한 타란티노 감독 덕분”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여우조연상은 ‘결혼 이야기’의 로라 던이 받았다.
한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수상을 기대케 만들었던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은 ‘러닝 투 스케이트보드 인 어 워존’에 밀려 수상엔 실패했다.
유색인종 배우가 연기상 부문 후보에 거의 오르지 못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연기상 부문 후보 가운데 유색인종 후보는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흑인 배우 신시아 에리보가 유일했다).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선 스티브 마틴은 “지난 92년 동안 얼마나 아카데미가 바뀌었는지 생각해보라”며 “그동안 흑인 배우들이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데, 2020년에는 딱 한명이 있다. 정말 많이 변했다”고 비꼬았다.
팝스타들의 화려한 공연도 눈길을 끌었다. 래퍼 에미넴은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8마일’의 주제가 ‘루즈 유어셀프’를 불러 객석을 뜨겁게 달궜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의 주제가를 부른 이디나 멘젤은 이 작품이 해외에서 개봉할 때 각 나라에서 주인공 엘사 역 더빙을 맡았던 가수 9명과 합동 무대를 선보였다. 엘튼 존은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로켓맨’의 삽입곡인 ‘아임 고나 러브 미 어게인’을 불렀고, 이 곡으로 주제가상까지 받았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