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 되면 유럽발 중계방송을 보며 새벽잠을 설치는 축구팬이라면 이미 느꼈을 것이다. 해를 넘기면서 뭔기 달라졌다.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스트라이커 리오넬 메시(32·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유벤투스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5·포르투갈)의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정상급 선수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두 선수의 기량은 여전히 20대 못지않고, 그 범위를 30대로 좁히면 웬만한 선수를 압도한다.
하지만 골러시가 지난 10년보다 한풀 꺾였다. 전성기 때 시즌마다 50골 넘게 쓸어 담던 두 선수가 2019-2020시즌의 3분의 2를 넘긴 요즘 25골 안팎으로 ‘반타작’에 머물러 있다. 과거의 묵직한 존재감이 잦아들었다는 얘기다. ‘끝판왕’ 같은 느낌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2010년대 세계 축구를 호령했던 ‘메날두’(메시+호날두)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누가 세계 축구의 새로운 10년을 지배할까.
2020년으로 넘어오면서 두 명의 유력후보가 등장했다.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엘링 홀란드(20·노르웨이)와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의 킬리언 음바페(22·프랑스)다. 각국 리그가 매직넘버 카운트다운을 시작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진출 16개 팀이 1차전을 일제히 끝낸 27일(한국시간) 현재, 두 선수는 20대 중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의 기량만 유지해도 ‘포스트 메날두’ 시대로 펼쳐질 2020년대는 ‘홀바페’(홀란드+음바페)의 시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꿈의 무대’ 득점왕 노리는 홀란드
홀란드를 빼놓으면 올 시즌 유럽 축구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홀란드는 지난해 12월까지 시즌의 전반부를 오스트리아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지난달부터 시작된 후반부를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그리고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연일 골러시를 펼치고 있다. 194㎝의 큰 키를 활용하는 ‘타깃형’이면서도 스스로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돌격형’의 면모를 모두 가졌다.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적진으로 파고드는 플레이 스타일도 그의 강점이다.
홀란드의 집안을 들여다보면 이런 플레이 스타일의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야전사령관’ 로이 킨을 때려 눕혔던 리즈 유나이티드 수비수 알프잉에 홀란이 그의 아버지다. 올드팬에게는 ‘홀란드’(Haaland)에서 ‘드’(D)를 생략한 ‘홀란’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그의 아들 홀란드는 이제 오스트리아, 독일을 넘어 유럽 전체를 장악할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잘츠부르크의 조별리그 탈락으로 끊어질 뻔했던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경쟁의 경우 올겨울 이적한 도르트문트에서 이어가게 됐다. UEFA가 올 시즌에 ‘컵 타이드 룰’을 개정한 덕이다. 컵 타이드 룰은 연맹 산하 대회 엔트리에 한 번이라도 오른 선수가 새 소속팀에서 같은 시즌 같은 대회에 출전할 수 없도록 제한했던 규정이다.
홀란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두 개의 유니폼을 입고 득점 기록을 쓰고 있다. 잘츠부르크 소속으로 조별리그 6경기에서 8골, 도르트문트 유니폼을 입고 참가한 16강 1차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렸다. 총합 10골을 기록해 득점 랭킹 선두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11골·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이제 한 달을 막 넘긴 분데스리가에서는 6경기를 뛰고 9골을 넣어 랭킹 10위에 올랐다. 잘츠부르크 시절을 포함한 올 시즌 득점은 모두 40골. 홀란드의 현재 득점 추세를 보면, 메시의 전성기 시절 한 시즌 최다 기록인 73골(2011-2012시즌)이 마냥 불가능한 도전만은 아니다.
월드컵 든 ‘앙리의 후계자’ 음바페
홀란드보다 먼저 주목을 받은 20대의 선봉장은 음바페였다. 음바페는 카메룬계 아버지와 알제리계 어머니의 아프리카 이민자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청소년 대표팀부터 프랑스 국적을 선택했고, 그 결과로 프랑스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을 일군 ‘신성’을 손에 넣었다. 음바페는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에서 결승전을 포함해 4골을 넣고, 21세 이하의 최우수선수(MVP)상 격인 영플레이어상을 받았다.
홀란드가 저돌적인 공격수라면 음바페는 속도와 개인기로 적진을 무너뜨리는 ‘크랙형’ 스트라이커에 가깝다. 한 번 공을 잡으면 현란한 발기술로 수비수를 속여 공간을 뚫거나 시야 밖의 동료에게 패스를 건네준다. 프랑스 국가대표 선배인 티에리 앙리(은퇴)의 전성기와 닮았다. 2015년 프랑스 리그앙 AS모나코에서 만 16세 347일의 나이로 출전해 앙리(만 19세 3개월)의 종전 최연소 클럽 데뷔 기록을 깬 주인공도 음바페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앙리의 후계자’다.
음바페는 올 시즌 리그앙 19경기에서 16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틈에 생제르맹은 21승 2무 3패(승점 65)로 독주하며 우승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다만 도르트문트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홀란드에게 2골을 얻어맏고 패배한 탓에 음바페는 최근 비난 여론에 휩싸여 있다.
김철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