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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세 두 동갑내기 거물 작가가 보여주는 ‘조각의 확장’

조각 개념의 확장을 보여주는 세계 조각계의 두 거물 어윈 웜과 프레드 윌슨의 개인전이 각각 서울 리만머핀갤러리와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어윈 웜의 ‘바니’(2019년, 실 뜨개와 폴리에스테르 레진, 144×129×133㎝)와 ‘돌’(2019년, 아크릴과 돌, 63×65×44㎝). 리만머핀갤러리 제공


프레드 윌슨의 ‘평화의 나방’(2018년, 무라노 유리공예와 전구, 177.8×174×174㎝)과 무제 ‘아쿠바’(2010년, 검은 유리, 가변설치). 페이스갤러리 제공


겨울 털모자를 뻥튀기 했나. 전시장에 설치된 털모자 밑으로 허리를 구부려 쑥 들어가 봤다. 아연 나만의 둥근 집이 생긴 듯 안온해진다. 오스트리아 조각가 어윈 웜의 작품은 이렇듯 일상의 물건을 조각으로 둔갑시키며 조각 자체를 경험하게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집콕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청정지대로의 피신을 꿈꾼다. 이럴 때 한산한 갤러리로 문화 힐링 나들이를 가보는 것은 어떨까. 대부분 미술관·박물관들이 잠정 휴관 중이지만 몇몇 갤러리들은 전시를 이어가는 중이다. 다중밀집시설이 아닌 데다 방문객도 더욱 뜸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마침 조각의 개념이 어떻게 확장돼 가는지를 보여주는 66세 동갑내기 거물 조각가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리만머핀갤러리의 어윈 웜 개인전 ‘안녕 서울’(4월 11일까지)이 그중 하나다. 웜은 30대 후반이던 1990년대 초부터 시도한 ‘1분 조각’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지시문이나 그림을 통해 관객에게 기묘한 자세를 취하게 함으로써 사람 자체가 조각처럼 보이게 한다. 작가의 지시문을 받은 관객이 길거리 휴지통에 들어가 동상처럼 동작을 취하는 식이다. 이는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관 작가로 선정됐을 때 선보인 핵심 주제이기도 했다.

작가는 일상적 물건을 가져와 전통적인 조각 개념에 균열을 낸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비니 시리즈다. 왕방울 털이 끝에 달린 종 모양 털모자 비니는 오스트리아 남자들의 겨울 필수품이다. 작가는 이걸 과장된 비율로 확대한 뒤 전시장에 설치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누군가는 동화의 나라에 들어간 기분이 들지만, 누군가는 뭔지 모를 불안에 젖기도 한다. 그는 오스트리아인의 ‘밥과 김치’ 같은 소시지와 오이를 가지고도 인체를 연상시키는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다. ‘돌’ 연작도 흥미롭다. 현지 산악지역에서 흔히 보는 돌덩이를 몸체처럼 사용하고 인간의 다리 형태를 캐스팅해서 붙인 것이다. 마치 구석기 시대 인류를 보는 듯 원초적 기억을 건드린다.

용산구 이태원로 페이스갤러리는 아프리카계 미국 조각가 프레드 윌슨 개인전(5월 16일까지)을 한다. 윌슨은 흑인의 정체성에 천착해왔다. 그 역시 2003년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조각가이면서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개념미술가인 그는 90년대 초반 ‘미술관 채굴하기’ 프로젝트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박물관 유물이 얼마나 철저히 백인 중심적 사고로 구성돼 있는지를 유물의 재배치만으로 보여줬다. 작가와 큐레이터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눈부신 샹들리에를 볼 수 있다. 샹들리에가 흑인의 정체성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작가는 2000년부터 유리를 사용해 작업했다. 몸 전체를 검게 하고 눈 두 개만 흰색 동그라미로 그려 흑인을 표현한 카툰을 풍자하듯 검은 유리 작품으로 흑인을 형상화했다. 샹들리에는 그 연장선에 있다. 베니스 전시를 계기로 현지 역사를 조사하던 그는 흑인 장군 오셀로와 백인 아내 데스데모나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셰익스피어 ‘오셀로’의 무대로서 베니스에 눈뜨게 됐다. 작가는 베니스 무나로 섬의 유리공예 장인들과 협업해 샹들리에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검은색 샹들리에는 용맹했지만, 비극적 결함이 있었던 오셀로의 이미지가, 흰색 샹들리에는 눈부시지만 부서질 듯했던 데스데모나의 이미지가 겹친다.

벽면에는 아프리카 가면에서 형태를 딴 검은 유리 조각 아래로 검은 물방울 조각이 흘러내리듯 부착된 게 보인다. 흑인 정체성을 가장 단순화시킨 형태다. 작가는 “내게 흑인은 검은 잉크 통에서 흘러나온 검은 잉크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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