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3일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증감 현황을 다른 주요국과 비교한 그래프를 지면에 실었다. 검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일본이나 통계 자체를 믿을 수 없는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의 치명률이 가장 낮았고 인구 대비 확진자 수도 가장 적었다. 6일 오전 현재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만284명이고, 사망자는 186명이다.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 같았던 미국의 확진자는 33만5524명에 사망자가 9562명이나 된다. 검사 수 대비 확진자 비율은 27.13%로, 10명을 검사하면 3명 가까이가 코로나19 환자란 얘기다.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검사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도 검사 대비 확진자 비율은 0.83%에 불과하다. 미국은 10명을 검사하면 3명 가까이 확진자가 나오는데, 한국은 확진자가 1명도 채 나오지 않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은 사태 초기 신종 바이러스 팬데믹을 아주 우습게 봤다. 그저 유행성 독감의 일종에 불과하다 여겼다. 지도자도, 국민도, 전문가도, 사회 시스템도 팬데믹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부러운 곡선은 없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코로나19 그래프를 그렇게 평했다. 한때 세계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았던 나라에서 어떻게 한 달여 만에 정점을 찍고 확진자가 급감했는지 믿기지가 않는다는 투였다. 세계 유수 언론들이 한국의 ‘코로나19 전투’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건강한 공공의료시스템, 신속한 의사결정, 재난상황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하는 매뉴얼, 대량검사와 대량치료…. 다 맞는 얘기다.
이런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 한국인의 눈으로도 잘 보여지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방식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지게 된다. 그건 바로 의료보험이든, 재난대처든 모든 일을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이 화학적으로 결합해 진행한다는 것이다. 우선 의료보험은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공적 보험 시스템과 민간 의료기관들의 경쟁이 공존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의료수가와 의료비 보조는 건강보험공단에서 결정하고, 민간 병원들은 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개발해 고객인 환자를 유치한다. 이렇게 보면 공공 의료보험이고, 저렇게 보면 병원들의 치열한 서비스 경쟁이다.
모든 게 무료인 유럽식 의료복지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첨단 의료서비스가 한국에선 이뤄진다. 미국인에겐 너무도 비싸 감히 병원 문턱조차 가보지 못하는 질병도 한국에선 공공의료보험 덕분에 값싸게 치료받을 수 있다. 이런 의료보험 체계가 없었다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저렇게 공격적인 검사와 신속한 중환자 병상 확보, 대규모의 의료진 배치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코로나19 컨트롤타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질병관리본부도 마찬가지다.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마자 가동된 중대본과 질본에는 전문 행정관료와 의료전문가들이 배치됐다. 전략의 밑그림이 만들어지자 진단키트 개발, 확진자 동선 추적 등은 민간기업들이 맡았다. 격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치료와 확진자 점검은 민간 거점병원들이 도맡았다. 마치 사전연습을 한 것처럼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영역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처음부터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이 ‘공동의 선’이란 용광로에 녹아들어 있는 한국적 시스템.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코로나19 곡선은 만들어졌다. 모든 게 국유화된 공공영역은 쉽사리 관료주의에 녹슬어 버린다. 모든 걸 경쟁에만 맡겨놓으면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다. 이빨이 빠져도 “메꿀 재료가 없다”는 공공병원 때문에 평생 빈 잇몸으로 살아야 하는 유럽과 돈 있는 부자만 번듯한 임플란트를 심을 수 있는 미국에선 이런 그래프가 만들어질 리가 없다.
신창호 사회2부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