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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Ⅱ



2016년 7월에 쓴 칼럼을 다시 읽었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이란 제목의 글은 당시 서울에서 열린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16차 대회’에 맞춰 기본소득의 논의를 확장시키고 실험을 통해 도입 여부를 살펴보자는 내용이었다. 2008년 국내의 한 학회에서 처음 소개된 후 8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이 개념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나라가 국민에게 무조건 공짜로 돈을 준다고?’, 뜬금없는 발상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낯설다 보니 불온한 이데올로기라며 매도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수는 좌파의 극단적 주장이라고 비판했고 진보는 시기상조의 비현실적 의제로 치부했다.

격세지감이다. 몇 년 만에 기본소득이 제대로 등판했다. ‘국민 각자에게 대가 없이 지속적으로 무상 제공하는’ 본래의 특성과는 차이가 있지만, 지금 거론되는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일 뿐이다. 개인 또는 가구 기준인지, 1인당 50만원 내지 가구당 100만원인지 등이 다를 뿐 여당과 제1야당 모두 돈을 줘야 한다는 데는 생각이 같다. 재난지원금을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했고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대했던 미래통합당의 안이 더 파격적이다.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오마이뉴스와 리얼미터가 8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확대를 묻는 말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8.2%로 ‘반대한다’의 36.6%를 크게 웃돌았다. 놀랍게도 미래통합당 지지층의 찬성이 57.8%로 한 달 전의 같은 조사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돈 앞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었다. 민심에서 확인됐듯 기본소득 성격의 재난지원금은 적극적 선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현재의 재난지원금은 복지를 뛰어넘어 경제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일리 있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데 방파제 걱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도를 크게 높였다.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외국의 사례는 어떠한가 등 국민의 학습 성취도는 향상됐다.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웬만한 국민은 알게 됐을 것이다. 한국교회도 기본소득에 주목했다. 신학자들은 주로 이 의미의 성서적 연원을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주인의 품삯에서 찾는다. 새벽부터 포도원에서 일한 품꾼이나 오후 늦게 와서 일한 품꾼에게 모두 한 데나리온씩 지급한 것은 능력이 아닌 필요에 의한 보상이라는 예수의 인간존중 정신을 담은 것으로 해석한다. 왜 기본소득인가라는 물음에 일자리 보완, 복지 강화, 행정비용 절감과 함께 인간 존엄의 실천이 절대 빠지지 않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교계의 진보 인사, 목회자, 신학자들은 잇따라 관련 모임을 갖고, 어떤 교회는 헌금을 전 교인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실험을 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기본소득이 신앙이다’는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등 신학점 관점에서 접근하는 한국교회의 시도가 점차 늘고 있다.

지지세가 힘을 많이 얻었다 하더라도 기본소득을 단기간에 전면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이니 수그러들었을 뿐 이념적 공격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재원 마련 등 현실적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을 위기의 대증적 변수 정도로 가볍게 여길 단계는 지났다. 상시적 정책화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정이 기본소득의 효용을 점검하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한국형 기본소득을 정교하게 설계해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나는 2년 후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핫이슈는 기본소득이 될 것으로 본다. 유권자들이 공짜 돈맛을 본 마당에 이보다 더 달콤하게 와닿는 공약이 있을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국민에게 그 길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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