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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 마스크에 가려진 진짜 민심은



코로나 총선은 정책 공약 인물 실종되고 양대 정당의 탐욕과 꼼수 막말이 판친 최악 선거
중간평가도 미래 비전도 없이 오직 진영 대결에 의한 패거리 정치와 정당 투표로 귀결돼
깨어 있는 중도층이 집단지성 통해 저질 바이러스 몰아내야


최악의 총선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결과 벌거벗은 정치의 부끄러움만 드러났다. 깜깜이 선거라서 정책이나 공약은 실종됐다. 인물은 온데간데없고 구태에 찌든 정당만 남았다. 그것도 군소 정당들은 구석으로 내몰려 양극단의 거대 진영만 보인다. 꼼수의 극치인 위성정당으로 시작해 선거전은 품격 잃은 막말과 비방 퍼레이드로 끝났다. 거대 양당은 그간 되풀이돼온 퇴행적 정치문화의 실체를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여줬다.

총선 무대에서 펼쳐진 역대급 삼류정치를 복기해보자.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막이 오르자마자 막장 드라마의 주연임을 서로 자처했다. 첫 도입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함축한 헌법적 가치를 너 나 할 것 없이 매몰차게 내팽개쳤다. 의석수 탐욕으로 위성정당이라는 괴물을 각자 만들어 대의제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 주권을 우롱했다. 코미디나 다름없는 현역의원 꿔주기로 혈세까지 파먹었다. 괴물을 형제라 부르면서 전국을 돌며 진영 대결 구도를 심화시켰다. 편 가르기를 위한 구호로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을 내걸었다. 중도 실용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고질적 지역주의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것도 부족해 광화문 광장과 서초동의 유명 배우인 조국과 윤석열마저 소환했다. 관객이 지루해할까봐 돈 풀기 포퓰리즘 곡예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종국에는 지옥행 막말 열차에 올라타는 무모함까지 과시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둔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파기도 했다.

흔히 총선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띠는 회고적 투표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안보 외교 경제 사회, 그 어떤 영역도 논쟁의 핵심으로 떠오르지 않아 심판론이 비빌 언덕이 없었다. 심판론을 국난 극복론이 막아선 때문이다. 신천지 집단감염으로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만 해도 여당은 나락으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 이후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돼 반전을 이뤄내면서 코로나 사태가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덕이다. 5년 전 메르스 공습 때처럼 정부가 무능력, 무개념, 무책임을 재연했으면 하나 마나 한 선거가 될 뻔했다. 한데 방역 본부와 의료진의 헌신, 사회적 연대의 힘을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이 정부의 초반 실책을 덮어주고 대한민국을 방역 모델 국가로 우뚝 서게 했다. 야권의 ‘분노 유발 마케팅’이 힘을 쓸 수 없었던 까닭이다. 오히려 여당이 제1야당을 코로나 극복의 방해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짭짤한 재미를 봤다. 전례 없는 코로나 총선의 기묘함이다.

동지 아니면 적이라며 분열과 증오를 불러일으킨 극단적 진영 대결의 막은 내렸다. 코로나 이후 새 시대에 대한 비전 제시가 뒷전이었다는 점은 또 다른 허탈함과 막막함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막장 정치에 열광하는 양극단 세력은 속속 결집하는 모양새다. 지역주의 망령이 다시 꿈틀대면서 여야의 아성인 호남권과 TK(대구·경북)권이 일당 싹쓸이로 굳어질 태세다. 오로지 ‘정당 투표’다. 결국 수도권과 접전 지역의 부동층 20% 공략이 승부처다. 막판 민주당은 겸손 모드로, 통합당은 읍소 전략으로 나왔다. 민주당은 안정론을 내세웠고, 통합당은 심판론이 아닌 정권 폭주 견제론으로 선회했다. 야당 고전, 여당 낙승을 의미하는 시그널이지만 엄살이 섞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지층 결집을 더욱 부추기고 중도층을 호객하는 허허실실 책략은 흔히 써온 수법이다. 자고로 선거판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수도권 박빙 지역의 결정적 키는 양대 진영의 집토끼가 아닌 중도층이 쥐고 있다. 깨어 있는 중도층의 집단지성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주말 사전투표에서 놀라움을 경험했다. 코로나 사태에도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한 그 뜨거운 열기는 마스크를 쓴 유권자들이 조용하면서도 날카롭게 정치판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코로나 위험 회피를 위한 분산 투표로 분석되긴 하지만 저질 패거리 정치에 대한 중도층의 경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희망적이다. 오늘 유권자의 날이 밝았다. 대한민국 미래와 국격이 달린 중차대한 선거다. 정치혐오와 냉소주의를 떨쳐내고 투표장으로 향하자. 똑똑하고 냉철한 유권자들이 마스크에 가려진 진짜 바닥 민심을 보여줘야 한다. 저질 바이러스를 이 땅에서 반드시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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